임진왜란이 장기화되면서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보급품이 끊기고 명나라 군대가 투입되자 전황이 불리해졌다. 슬슬 출구전략으로 휴전을 생각하게 됐다. 명나라는 "일본의 각 장수가 모두 갑옷을 풀고 전쟁을 그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조선도 전쟁의 어지러움을 벗는 것이 양국의 이익이다. 조선군은 왜군과 교전하지 말라"는 취지의 문서를 이순신에게 보냈다. 이 때 이순신은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으며 의리를 지켰다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이를 반박했다. 본국으로 돌아간 왜군은 3년 뒤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일본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다. 731부대 인체 실험에서부터 자살특공대 `카미카제`까지 2차 세계대전에서 벌인 패륜적 만행은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독도 문제나 최근 경제 도발 과정에서 보인 어거지도 황당하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종자는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나 사고방식이 다를까. 그 이유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 신하 안영은 어느날 사신으로 초나라를 방문했다. 초나라 왕이 안영 일행을 망신 주려던 차에 마침 초나라 형리들이 죄인을 하나 끌고 지나갔다. 형리에게 누군지를 묻자 "이 죄인은 제나라 사람인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일삼아 끌고 가는 길입니다"라고 답했다.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오"라고 빈정댔다. 이에 안영은 "저희 회남에서는 귤이 잘 자랍니다. 그 맛이 아주 달고 향기롭지만 귤나무를 초나라 지역인 회북에 옮겨심으면 쓰고 신 탱자가 됩니다. 제나라 백성들은 생활이 풍족해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이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초나라에 살게 되면 저런 도둑이 생긴다고 합니다"라고 대꾸했다.

제15호 태풍 파사이가 지난 9일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강타했다. 세계 최고라는 안전 기술은 대자연 앞에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수십만 가구가 정전으로 고통받았고 10여일이 지난 후에도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수만가구가 암흑시대를 보내고 있다. 일본은 늘상 지진과 태풍과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겪어왔다.

인의예지신은 미래를 위한 덕목이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사치다. `오늘만 사는` 역사가 쌓이고 쌓여 그들의 성정을 쓰고 신 탱자로 만든 것 아닐까.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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