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소심지활(小心地滑).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중국식 표현이다. 여기서 `소심`은 조심 또는 신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말 `소심(小心)`은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라고 소심을 설명하고 있다.

소심의 사전적 해설에 나오는 지나치게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말에서 소심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본인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발생 가능한 문제점이나 각종 상황을 주의 깊게 헤아리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주변 사람 눈에는 소심하게 보이게 된다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지나치게 라는 말 자체가 `일정한 한도나 기준을 전제로 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므로 자칫 주관적인 판단이 되기 쉽다.

물론 객관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소심하다는 표현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타당한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소심하다고 평가당한 그 사람은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일 수 있다. 한편 소심의 반대말은 `대담` 또는 `대범`이다.

대범의 사전적 의미는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이다. 대범이라는 말을 들으면 작은 문제들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측면에서 소심을 바라보면, 사소한 문제들에 발목을 잡혀서 안절부절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미지가 보인다.

여기서 본인이 소심한지, 또는 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한지를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는 한 가지 팁이 생긴다.

평소 작은 문제나 주변 상황을 신경 쓰지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다시 말해 어떻게든지 문제를 해결하고 일을 진행시켜 뭔가 결실을 맺으려 한다면 소심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평가해도 좋다. 자신이 매사에 소심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일단 눈앞에 닥친 과제를 파고들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현 상황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나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천천히 풀어가고, 현 상황에서 해결이 가능하지 않은 문제는 상황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저런 노력에도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그 문제는 그냥 그대로 둔 채 다음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과감하게 한번 앞으로 나가 보는 것이다.

시험 문제를 풀다 중간에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해서 그 문제에만 매달려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일단 적당히 답을 적어 두고 다음 문제를 푸는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방법이다.

때로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같은 문제를 다시 바라보면, 의외의 해법이 떠오르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면에서 소심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세심(細心)`이 있다. 세심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세심은 배려와 어울리는 말이다. 세심한 배려라는 표현은 있어도 소심한 배려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는다.

소심에는 본인을 위험 속에 두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저 깊은 바닥에 깔려 있다. 반면 세심에는 타인을 비롯한 전체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는 마음이 있다.

소심에서 세심으로의 변화는 양적인 면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하는 질적 전환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용기와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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