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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외사랑

2019-09-23기사 편집 2019-09-23 08: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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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문승현 기자

최근 대구에서 지역 토박이들과 술 한 잔 기울일 일이 있었다. 식당 냉장고 한쪽 파란색 병뚜껑 소주가 강렬해 주문하려는 찰나. "에이. 그거 영 파이라(별로다)." "왜?" "파이라카이. 우린 이슬 먹는다." 거센 경상도 사투리의 굴곡진 억양 어딘가에서 완강한 거부반응이 느껴졌다. 이 소주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 지역기업의 소주 제품 중 하나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남이가'로 표현되는 특유의 지역정서로 'TK'라는 정치·경제·사회적 동맹을 구축해온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구 토박이들이, 대구 기업이 만든 대구 소주를 외면한다는 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물었다. "지역소주를 왜 안 먹는 거냐. 지역에선 지역소주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후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소주회사의 비화를 오랜 시간 들어야 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3년 전 이 회사는 결혼한 여직원을 상대로 퇴직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창사 이래 결혼한 여성을 퇴사시키는 관행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와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그냥 맛이 없다'는 것이다. 술도 음식인데 맛이 없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 대전·충남 소주 '이제우린'이 생각났다. "우리소주 정말 맛있다"며 이제우린 자랑에 침이 마르던 맥키스컴퍼니 사장의 얼굴도 스쳤다. 두 회사 모두 지역에 기반한 전통의 향토기업이고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다만 부진의 원인이 파란 병뚜껑은 명확하고, 이제우린은 오히려 지역에 대한 '외사랑'에도 뜨뜻미지근한 충청도 지역정서에 기를 못 펴고 있다는 게 다르다.

또 하나 분명하게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 파란 병뚜껑 회사는 23일부터 제품 출고가를 6.45% 올린다고 한다. 이제우린은 앞서 참이슬 등 가격 인상에 동참하지 않고 올해 가격동결을 선언한 바 있다. 지방소주사 중 최초였다. 그 덕에 지역민들은 식당에서 여전히 4000원에 소주를 마신다. '지역주민과 고통분담'을 내세운 향토기업 맥키스컴퍼니의 진심을 애써 모른 척 할 게 아니라 술자리에서 "이제우린 주세요" 한마디로 이제 그 사랑을 받아줄 법도 하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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