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언제부턴가 오랜 동네가 핫 플레이스가 되는 데는 힙한 카페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대전 동구 소제동에 낯선 사람들의 발길이 늘기 시작한 것도 카페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동네와는 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공간이라 여겨졌던 그 카페들이 소제동이라는 동네가 있었는지 몰랐던 사람들조차 이곳을 찾게 함을 부정할 수 없다.

장소감은 장소에 대한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뜻하지만, 장소의 의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카페 통유리창의 사각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쇠락한 동네의 풍경은 카페 인테리어의 한 부분으로 작동한다. 포크레인의 날 아래 무너져 내린 담벼락, 사라진 인도, 집안의 방을 구분하는 벽들이 허물어진 날 것 같은 풍경은 너무도 쾌적하고 트렌디한 카페 실내와 기묘한 괴리감을 만들어내며 이 경관을 볼거리로서 소비하게 한다.

목에 같은 명찰을 건 단체관람객을 마주하는 것은 소제동에선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원도심 투어 일행을 골목에서 마주하게 됐는데, 그들은 철도관사촌의 연혁을 퀴즈문제로도 풀어가며 흥미진진한 눈빛을 빛냈다. 이 장소에 유예되어있는 시간이 얼마 없음은 관광객의 탄식을 부르며 볼거리로서의 효과는 배가된다. 곧 사라져 과거 속의 장소가 될 곳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는 현재감은 그런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시각적 볼거리로 즐기는 기이한 이중성 안에 놓이게 한다. 그들이 골목을 누비며 담장 안을 들여다보거나 렌즈에 담는 모습을 보다보면 사적공간이 공적공간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주거공간이 늘고 있는 도시의 현실과는 달리 이곳은 볼거리로서의 동네, 포토제닉한 풍경인 것이다.

도시 재개발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을 동물원처럼 서로가 서로를 타자로 바라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개발이 지역이 지닌 기억의 장소와 삶의 경관들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공간에 새겨진 오랜 주름들을 매끈히 밀어버리고 새로이 구획을 나누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경계와 밀도를 지닌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 속에서 소제동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정체성은 사라져 가고 있다. 지역 주민과 더불어 문화자산을 갖고 있는 지역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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