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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한 책읽기

2019-09-17기사 편집 2019-09-17 0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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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도시 한 책'운동이 있다. 1998년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 워싱턴 북센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이라는 표제 아래 출발한 '한 도시 한 책'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도 2003년 도입돼 30개 넘는 지자체가 풀뿌리 독서운동으로 '한 도시 한 책'을 진행하고 있다. 파편화되고 분절된 현대사회에서 '한 도시 한 책'은 동일한 책을 매개 삼아 다양한 주민들이 토론하고 문화체험을 나누며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의미가 담겼다.

한 책 읽기가 꼭 도시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 세대나 성별을 넘나들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세대간 대결을 부추기는 담론의 홍수 속에서 청년세대와 중·장년 세대들이 '90년생이 온다'거나 '청년팔이사회', '불평등의 세대'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어떨까? 여성과 남성이 '현남오빠에게'를, 부모와 자녀가 '이상한 정상가족'을 같이 읽고 서로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나눈다면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한 책 읽기는 나라를 달리해서도 가능하다. 국경을 접한 남·북이 한 작가의 책을 읽고 교류할 수 있다면 심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리라. 거기에 맞춤 한 작가로 민촌 이기영이 있다. 이기영은 1895년 아산 회룡리에서 태어나 서너살 무렵 천안 안서동 중암마을로 이사 왔다. 1924년 '개벽'으로 등단했으며 1933년 7월 천안으로 내려와 성불사에서 40일간 '고향' 초고를 완성했다. 한국전쟁 뒤 북한에서 소설 '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사망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던 대문호 민촌 이기영의 계승사업이 천안에서 활발하다. 식민지 농촌현실을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낸 그의 소설 '고향'의 배경이 된 천안시 유량동 일대에는 소설과 민촌 삶의 흔적을 따라 거닐 수 있는 '고향'길이 민간의 힘으로 조성됐다. 민촌이기영'고향'문화제가 천안에서 매년 열리는가 하면 남북을 잇는 민촌의 위상을 통일시대 자양분으로 삼고자 기념사업회 창립도 본격화되고 있다. 남·북 사람들이 어울려 천안의 '고향'길을 걸으며 정담을 나누는 일, 불가능한 걸까? 찬바람 불고, 귀뚜라미 울고, 계절은 어느 덧 독서에 좋은 날들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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