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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지역 예술 지원금액을 올려야 한다

2019-09-16기사 편집 2019-09-16 08: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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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수연 충남대 교수
문화 예술에 대한 나라의 지원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원을 통해 더 나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라의 살림에 여유가 있는 한 최대로 지원하는 것이 옳다. 삶이 피폐해질수록 여러 예술 행위가 주눅들 수밖에 없을테니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여유 있게 해보려는 것이 지원제도의 중요한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장경제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얼마나 균형 잡힌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차라리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원액으로 삶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가들에게는 지나친 모욕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의 말을 빌면 각각의 예술가들은 '대한민국의 전 재산'이어서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자질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를 값으로 매겨 지원한다는 사실은 예술가들에게는 이미 가당치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말로 지원금이 필요한 예술가들이 있다. 그리고, 그걸 요리조리 활용해먹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다.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첫째, 지원금의 문제가 있다.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원금의 상향조정이 필요하다. 인구가 줄면 세액도 줄고 정부 예산도 준다. 결국 문예지원예산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나눠주면서 지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여러 원성을 고려해 나눠주기식의 소액 지원으로 일관한다면, 결국 문예지원이 아니라 지원을 빙자한 통치술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지원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일정액 이상의 수입이 있다거나, 기준치 이상의 연금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시장경제사회에서 일정한 급여나 연금이 있는 사람들은 그 기울어진 시장에서 이미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행정적인 문제가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온라인 신청을 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거의 모든 신청자들이 하고 있다.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지원신청을 포기하겠다는 신청자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 지원 결과물을 제출하는데, 준비해야 할 서류가 잡다하게 많은 것도 문제다. 예술가에게 지원을 하는 이유는 예술작품을 만들라는 것이지 서류 처리와 보고를 잘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집행 서류 준비가 까다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과거 지원금을 통해 저항적 예술가들을 통제하려던 모 문체부 장관의 잔꾀 때문인데, 이는 막대한 정신적 에너지 낭비로 귀결되고 말았다. 지원기관은 예술가들에게 지원의 결과물인 예술작품만 만들어내면 된다는 행정적 자신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집행 서류가 없어도 창조적 결과물이 진짜로 만들어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혹은 지난해 모 부문의 수혜자가 가짜 결과를 만들어 보고했다가 망신을 당한 사례에서 보듯이 지원금을 회수하면 될 일이다.

셋째, 지원의 객관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심의위원제도를 좀더 냉철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모든 심의위원들을 관외의 인사들로 채우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꼭 지역 인사가 지역 예술작품을 잘 평가하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평가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수한 작품을 지원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그럴 때 지역 예술 작품이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예술작품이 되는 통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는, 말도 되지 않는 작품들을 지원하기 위해 무수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연이나 지연이 이 일에 방해가 된다면, 심의제도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우수한 작품은 전국의 누가 보아도 우수한 작품이다. 학연이나 지연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모두가 알겠지만, 학연 지연에 따른 선정은 처참한 작품만을 뽑아올릴 뿐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뽑아올린 작품에 대해서 눈을 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 내용이 없는 속빈 강정이라면 나라도 나서서 비판할 수밖에 없다. 박수연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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