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를 이용해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1심에선 무죄,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안 전 지사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어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실형이 확정됨에 따라 대권후보 경선에 나서는 등 충청 잠룡으로까지 거론됐던 안 전 지사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 판결이 주목받은 건 그가 유명 정치인 데다, 1심과 2심 판결 결과가 전혀 달랐던 탓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1심과 달리 2심에서 이유로 든 유죄의 근거를 그대로 인정했다. 1심은 수행비서 김지은 씨의 피해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판결한 반면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안 전 지사를 법정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미투 운동을 몰고 왔던 그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상당 부분 바꿔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폭행이나 협박 정도가 항거 불능 수준에 이른 경우에만 유죄를 인정하는 기존의 판결을 깨뜨린 것도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처지를 고려해 피해자가 제시하는 증언과 증거의 효력 인정 기준을 완화하는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론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그 진술에 입각해 엄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준다. 특히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새 기준을 마련한 점은 커다란 성과다.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것 역시 유의미한 평가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을 힘 있는 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봤다면 앞으로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됐다. 사법부가 가해자 중심의 판결에서 벗어나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점은 여러 모로 환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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