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③대흥동 성당

[사진=빈운용 기자]
[사진=빈운용 기자]
한국전쟁 이후 도시가 재건되고 산업화가 시작될 즈음. 대전에는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이 아닌 또 다른 도시의 축이 형성된다. 바로 대흥동 성당이 위치하는 대종로다. 대종로는 근현대사의 다양한 문화를 갖는 건축물들이 위치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흥동성당이다.

지금은 평화방송, 국민은행 건물처럼 높은 건물이 들어섰지만, 성당이 들어선 1960년대 당시에는 큰 축이자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이념을 넘어 누구나 보호받을 수 있는 성지이자, 보호막이었다.

대흥동성당 답사에 동행한 이상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흥동성당 100주년을 맞아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며 "대흥동성당이 보다 더 성역화되고 종교적 체험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장소로 재탄생 한다면 지역과 함께 새로운 도시발전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교 건축의 파격을 선도하다= 대흥동성당에는 `성당`하면 떠오르는 고딕풍의 뾰족한 첨탑, 으레 좌우측에 있는 두개의 종탑이 없다. 모던하게 건축됐으면서도, 톱날형 창문을 돌출시켜 평면상의 변화를 주는 등 위에서 봤을 때 더욱 재미난 모양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에 설계를 마쳤음에도, 가톨릭이 1962년부터 건축양식의 현대화를 논의하기 전부터 파격을 이끌었다. 전통적인 고딕양식의 성당건축 틀을 깨고, 한국 가톨릭이 정착하기 시작한 고난의 시대를 거치며 어렵게 마련했던 성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건물 옆에 위치한 성모상은 여태껏 보았던 성모상과 무언가 다르다. 골격이 굵고 늠름한 풍채를 지녔다. 높이도 3m 가까이 된다. 특유의 강인한 분위기 때문에 신자들은 성모상에 `장군 성모`라는 별칭을 붙였다.

성당 내부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기둥이 없다. 기둥이 없는 건축형태를 무주(無柱)라고 하는데, 1960년대 당시 기술력과 규범을 고려하면 건축적·종교적으로 큰 충격을 몰고 온 파격이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가운데 기둥을 두지 않고 넓은 미사공간을 두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이 교수는 "대흥동성당은 근·현대 건축스타일을 반영해 1960년대 대전이 갖출 수 있는 건축적 수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보여준다"며 "고전주의를 재해석한 독특한 건축양식은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성에 대한 요구이자 대전의 특징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건축적 자긍심"이라고 말했다.

△대흥동 성당은 예술작품= 성당 전면에는 12사제 조각이 늘어서 있다. 지금은 미술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거장, 故이남규 교수와 최종태 교수가 젊은 작가 시절 조각한 작품이다. 당시 두 거장은 각각 로카,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갖고있는 신자이기도 했다. 12사도는 이남규 교수가 왼쪽 6명의 조각, 최종태 교수가 오른쪽의 6명 조각을 제작했다. 지금은 대흥동성당이 갖고있는 자원중 가장 가치있는 작품으로 남았다.

성당 내부 양쪽 벽면에는 예수가 걸은 14개 고난의 길을 표현한 `14처`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예술로 신앙을 전파한 `떠돌이 화가` 앙드레 부통 신부가 1970년대에 그려놓은 작품이다. 그러나 "강렬한 색감의 작품이 부담스럽다"는 당시 신자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작품은 결국 14점 중 2점만 남기고 마감재로 덮였다.

이 교수는 "단지 `성당이니까 다양한 성물들이 있구나`하고 무의식적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보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며 "3년 전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지만, 단순히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넘어 예술적인 가치가 상당히 많이 함축돼 있는 건물"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종지기`=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던 맑은 종소리는 이제 민원을 부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대흥동성당에서 50여 년간 종지기로 봉직해온 조정형(73·프란치스코)씨가 오는 22일 오전 10시 주일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을 끝으로 은퇴한다.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는 대전 구도심의 상징이었다. 조 씨가 울린 종소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음된 소리가 아닌 타종 소리였다. 그는 매일 120개의 종탑 계단을 걸어 올라 성호를 긋고 기도한 후 시간에 맞춰 종을 울려왔다. 대흥동성당 측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타종을 전자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 공감했고 그 시기를 100주년으로 정했다. 이에 22일 조정형씨의 마지막 타종을 끝으로 타종 방식을 전자식으로 바꾸고 기존 3개의 종에 8개의 작은 종을 더 추가하는 공사를 진행해 연말부터 다시 타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씨는 은퇴 후 대흥동성당 박진홍 신부와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올 계획이다.

이 교수는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대흥동성당은 본연에 내재된 성스러움과 상징성의 보존뿐 만 아니라, 대전 원도심의 정체성과 도시적 맥락의 상징적인 장소성을 함께 보존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종교적 기능에 덧붙여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포용한다"며 "앞으로도 종교와 역사 등 다양한 문화 중심에 발전을 지향할 수 있는 매개공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사업과 더불어 시민에 안식처이자 문화공간의 코어(core), 또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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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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