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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나는 애벌린(Abilene)에 가고 싶지 않아요."

2019-09-09기사 편집 2019-09-09 08: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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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전재현 대전시 보건환경연구원장

1974년 7월 오후, 텍사스 주 콜맨의 여름은 온도가 섭씨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무더웠다. 장인어른이 모처럼 친정집을 방문한 딸네가 따분해 할까 봐서 "우리 애벌린에 가서 외식이나 하고 오지"라고 말한다. 하비교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장인과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데 자기만 처가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애벌린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들은 더웠고, 오랜 시간 동안 먼지에 시달려야 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음식은 그들이 온 길만큼이나 나빴다. 그렇게 왕복 170㎞를 달려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4시간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그렇지요?" 그러자 장모님이 자신은 사실 집에 있고 싶었지만 다른 세 사람이 애벌린에 가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하비교수가 말했다. "저도 애벌린에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갔을 뿐이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장인이 입을 열었다. 단지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제안을 해 본 것뿐이었다고 말이다. 가족 모두,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애벌린에 다녀왔던 것이다.

'애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는 한 집단 내에서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가 다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함께 자신의 의사와 상반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동의하는 역설을 말한다. 이 현상은 집단 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흔히 발생한다. 쉬운 예로 부서 1차 회식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 2차 가서 한 잔 더하자고 외칠 때 마지못해 따라갔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정작 2차를 원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알았을 때 얼마나 허탈했던가.

필자가 속한 공직사회는 다른 조직에 비해 보수적이고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무성격상 법령에 따라 집행하고 규범의 틀에서 행정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것 같다. 특히 조직이 직급체계로 구성되어 있어 상명하복의 문화가 있고 동료 간에도 다수 의견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애벌린 패러독스에 빠지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은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간부는 항상 직원들이 '원치 않는 잘못된 결정'에 이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회의 시 부하직원의 의견을 먼저 경청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직원을 격려하고 높이 평가한다면 회의는 저절로 수준 높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는 기법도 있다.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고의로 반대의견을 제하시는 방법으로, 악마의 대변인을 정해 상사의 의견이 틀렸다고 함으로써 회의를 지시나 통보가 아닌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노력도 매우 중요한데 흔히 이 부분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업무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있는 직원은 상사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신감 없는 직원은 소통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직원들은 항상 자신의 업무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통해 전문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거나 다수 의견에 편승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임승차 심리도 경계해야 하는데, 직원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이러한 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필자는 업무에 있어 자신의 의견은 없고 상사의 지시만 기다리는 직원은 유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이상한 상황은 항상 발생한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는 원치 않는 2차를 갈 것이다. 애벌린에 가고 싶지 않다면 용기 있게 외쳐야 한다. 자유로이 소통하는 조직, 맡은 업무에 소신 있는 직원, 유연한 사고의 리더, 시민이 바라는 공직사회가 아닐까.

전재현 대전시 보건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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