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기자동차 제조사로 유명한 `테슬라`의 사명은 한 발명가 이름에서 따왔다. `니콜라 테슬라`이다. 발명왕 하면 에디슨을 떠 올리기 십상이나 테슬라를 최고로 꼽는 사람도 많다. 동시대를 살았던 에디슨과 테슬라는 경쟁 관계였지만 협력도 했다. 1882년 에디슨 연구소에 입사한 테슬라의 천재적 재능을 먼저 알아본 이도 에디슨이었다. 에디슨은 전기를 싼 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주겠다고 테슬라에게 약속했다. 테슬라는 혁신적 교류시스템 발명으로 약속을 지켰지만 에디슨은 나 몰라라 했다.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사표를 던지는 걸로 응수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는 테슬라와 에디슨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했지만 수상의 영광은 둘 모두 안지 못했다. 에디슨과 공동 수상을 테슬라가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지난 8월 말에는 "쇼맨십의 천재 에디슨과 상상력의 천재 테슬라"라는 카피를 앞세운 영화 `커런트 워`가 국내 개봉했다.

테슬라와 에디슨처럼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이들을 뜻하는 신조어로 `프레너미`(Frenemy)가 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는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띈다. 특히 기업영역에서 프레너미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경쟁사인 동시에 협력사이며 구글과 애플 역시 프레너미 관계다. 일본의 경제도발로 양국 관계가 냉랭해졌지만 한국과 일본도 과거부터 프레너미에 속했다.

정치분야도 가히 프레너미 직군이라 부를 만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정적이 돼 폭로전의 최전선에 서는가 하면 매일같이 으르렁대던 숙적이 한솥밥을 먹으며 우애를 과시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결국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며 공존하는 프레너미 관계를 직관한 돌직구가 아니였을까.

가장 무서운 건, 친구는 언제나 친구이고 적은 언제나 적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다. 독선에 가까운 이런 믿음에 사로잡힐수록 불러오는 건 공멸이다.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탁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