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행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관계 회복을 원만히 만들기 위한 의사소통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과문은 피해자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듯한 관습적인 사과로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건강식품에서 발견된 곰팡이 때문에 위기 상황을 겪은 업체의 사과문은 사과의 대상을 깊게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의 피해 상황에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늦게나마 내놓은 성의 없는 사과문의 내용은 되려 원성을 사면서 수용되지 못하였다.
사실 사과 행위는 `체면`과 매우 관련이 깊다. 즉, 사과를 건네는 처지에서는 체면의 손해를 입지만 사과를 받는 처지에서는 체면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과하는 순간에도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부분에서 적절히 타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간혹 안 하니만 못한 사과가 나오는 것이다. 체면에 손상을 입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어떠한 의사소통보다 청자가 수용해야만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사과의 말이다. 그러므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당황했더라도 어떻게 진심을 전할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명절에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부모님께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는 밤을 보내야겠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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