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는 꽤 선선해진 날씨에 갑천변을 여유롭게 거닐었다. 시원한 공기가 몸을 감싸자 감춰져 있던 가을 정취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던 순간, 자전거를 타던 한 사람이 내 팔을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는 땅에 떨어져 화면이 깨졌고, 그와 동시에 내가 걷는 곳이 자전거용 길이었나 확인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다가와서 건네는 첫 말이 "죄송합니다. 핸드폰 보험은 가입돼 있으신가요?"란다. 사과를 받은 것인지, 보험 영업을 받은 건지 알 수가 없는 전개에 한동안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요즘 쓰고 있는 사과문에 관한 논문을 잠시 잊으려고 나온 것인데, 부단히 연구하라는 계시인 건지 참 별일을 다 겪었다.

사과 행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관계 회복을 원만히 만들기 위한 의사소통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과문은 피해자를 크게 고려하지 않은 듯한 관습적인 사과로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건강식품에서 발견된 곰팡이 때문에 위기 상황을 겪은 업체의 사과문은 사과의 대상을 깊게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의 피해 상황에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늦게나마 내놓은 성의 없는 사과문의 내용은 되려 원성을 사면서 수용되지 못하였다.

사실 사과 행위는 `체면`과 매우 관련이 깊다. 즉, 사과를 건네는 처지에서는 체면의 손해를 입지만 사과를 받는 처지에서는 체면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과하는 순간에도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부분에서 적절히 타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간혹 안 하니만 못한 사과가 나오는 것이다. 체면에 손상을 입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어떠한 의사소통보다 청자가 수용해야만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사과의 말이다. 그러므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당황했더라도 어떻게 진심을 전할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명절에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부모님께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는 밤을 보내야겠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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