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272쪽/ 1만 4500원

유머란 무엇인가
유머란 무엇인가
웃음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국 시인 겸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은 `희극 정의의 어려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지금껏 인간의 지혜는 다채로웠으나 웃음은 늘 한결같았다"고 언급했지만 그의 주장은 분명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웃음은 오만가지 표현들로 이뤄진 언어다.

낄낄대며 웃고, 깔깔거리며 웃고, 신음하듯 웃고, 소리 죽여 웃고, 새된 소리로 웃고, 우렁차게 웃고, 쇳소리를 내며 웃고 히죽거리고, 박장대소하고….

또 웃음 소리의 크기, 톤, 강도 등은 다양한 범주의 감정적 태도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아주 기뻐하거나, 비꼬는 웃음, 교활한 웃음 등을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웃음 자체는 순전히 한낱 무의미한 소리로 `기표`에 불과하지만 사회적으로 속속들이 코드화 된다.

이 책은 유머의 본질과 기능을 파고든다.

`우리가 왜 웃는지`, `웃음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유머는 체제 전복적인지` 등의 질문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면서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도입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고대의 지배 엘리트층과 중세 유럽 사회는 유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예로부터 웃음은 고상한 즐거움과 천박한 키득거림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 계급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좋은 혈통과 나쁜 혈통의 유머 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민들에 대한 조롱을 단호히 반대하면서 희극을 주로 노예나 외국인에게 기꺼이 위임했다.

희극에 대한 중세 교회의 두려움은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이 사안에 대해 한층 유연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는 영혼의 기쁨 말고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의 치료 활동의 일환으로 유머를 권했다.

유머에 대한 인색하고 삐뚤어진 의혹은 경박함에 대한 공포 이상의 것에서 비롯됐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특히 집단적 차원에서 통제력 상실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반영됐다.

웃음은 민주적 특질도 지니고 있다. 튜바 연주나 뇌수술과는 달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이나 기술, 특권적 혈통, 주도면밀하게 육성시킨 기술 따위가 전혀 불필요하다.

희극이 통치권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무정부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통이나 죽음처럼 중대한 사안들을 가볍게 봄으로써 지배계급이 비책으로 숨겨두는 사법적 제재의 힘을 얼마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머에 관한 인류 정신의 발달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머의 부조화에서 기인한다거나 유머가 타인에 대한 가학적인 형태의 우월감을 반영한다는 등의 다양한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수 세기에 걸친 유머의 사회·정치적 진화 과정과 그 기저에 깔린 정신분석적 기제를 살핀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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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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