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추석이 다가온다. 명절에는 유독 가족이 그립다. 누구에겐 어머니, 아버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으로 마음 든든해지기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설치미술가 강서경은 `할머니`를 모티프로 한 작품 `그랜드마더타워(Grandmother Tower)`를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장에 설치하였다. 이른바 ` 할머니 탑`으로 직역되는 작품 `그랜드마더타워`는 둥근 철제 조형물 여러 개를 쌓아 올린 탑의 형태이다. 주로 선형인 원형 조형물은 다양한 색실로 감은 버려진 접시 건조대를 반복적으로 쌓고 결합시킨 것이다. 최소한의 불안과 균형을 지닌 탑의 몸체는 기우뚱하게 기울어져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의 실루엣을 형상화했다. 시리즈인 이 작품은 강서경의 영국 유학시절 부터 제작되었다. 그녀는 투병 중이던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다고 한다. 위중한 상태의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녀인 작가가 집에 들어서자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벽에 몸을 기대며 힘겹지만 꾿꾿히 일어섰다. 강서경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할머니는 생전에 굉장히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분이셨어요. 몸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도 저를 보시려고 벽에 몸을 기대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시려는 모습이 비단 슬픈 것만이 아니라,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다시 런던의 제 스튜디오로 돌아와 할머니의 키만한 `그랜드마더타워`를 만들었습니다."

작업의 우아하고 연약한 듯 선형적인 형체는 할머니 생전의 아주 아름답고 심플한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비틀비틀하지만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몸을 일으키던 할머니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불안하지만 최소한의 균형을 잡고 있는 실제 할머니 크기만한 타워로 제작되었다.

결국, 불균형적 상황을 초래할 병마와 노쇠, 죽음 앞에서도 굴복되지 않은 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모습은 강서경이라는 예술가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 말하고자 하는지를 표상하고 있다.

이는 재미나게도 자신의 `인간성`을 일깨우고 그 `인간다움`을 끝끝내 지키려했던 칸트와 그의 마음의 벗 주치의가 서로를 알아차린 순간과도 닮았다. 더불어 아무것도 아닌듯한 점, 선, 면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예술의 의미와 무게를 새삼 상기해 본다. 다양하지만 엄존하는 우리의 삶과 다양한 형태에 공명하는 예술가의 예술 말이다.

오늘도 난 단순하지만 하나의 점, 또하나의 선, 그리고 면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진 미술관 속 예술작품 앞에서, 예술가가 회복하려는 삶의 결핍이 어떻게 균형감을 찾는지 발견하고 있다. 그들의 말과 의미를 알아차린 다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희랍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는 속담을 즐겨 말하곤 했나보다. 아름다운 것이 쉽다면 그것이 어찌 `아름다움`일 수 있겠는가!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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