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② 대전창작센터

대전창작센터. 사진=빈운용 기자
대전창작센터. 사진=빈운용 기자
대전시 중구 은행동 대흥동성당 앞 사거리 모퉁이에는 작지만 옹골찬 모습으로 의젓하게 자리잡은 2층 건물이 있다. 바로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인 대전창작센터다. 관공서라기에는 나즈막한 높이와 일반주택을 닮은 지붕이 친근하다. 건물 외관 창에는 사각 프레임을 달아 추상화를 보는 듯 하다. 1999년 7월부터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 변경 됐지만, 그 해 12월에 사무소를 선화동 옛 검찰청사로 옮긴 후 한동안 방치돼 있었다. 20세기 중반 서양의 기능주의 건축에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 건축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1999년 `건축문화의 해`에 `대전시 좋은 건축물 4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청사가 옮겨 간 뒤 2008년 대전시립미술관의 `대전창작센터`로 개관했다. 페인트 칠은 벗겨지고 더 이상 작동이 되지 않는 창문의 철제 가리개는 녹슬었지만, 현재는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국내 최초로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전시관이 된 대전창작센터는 그렇게,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다스리듯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1세대 한국인 건축가 배한구=농산물의 품질 관리를 위해 건립된 관공서로, 대전 지역 1세대 건축가인 배한구가 설계했다. 한국인에게는 의미가 깊은 숫자 100. 등록문화재 제 100호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근·현대건축물이라고 하면 통상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이 거의 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사실 1985년 이후 탄생한 건축물이 더 많이 포함된다"며 "보통 한국인으로서 근대식 건축교육을 받고 작품활동을 하는 건축가들이 1940년 초반부터 나왔는데, 배 건축가는 1936년에 서울의 경성직업전문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939년에 대전에 내려왔다.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라고 말했다. 배한구 건축가는 대전 창작센터 외에도 대전중학교 옛 본관건물, 충남고등학교 건물, 대전 YMCA, 부여농협 등 굵직한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이 교수는 "배 건축가는 1940년도부터 목척교 인근에 설계사 사무소를 열었다. 근대식 건축교육을 받고 전문 기술을 갖고 설계했던 대전의 1세대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며 "70년 가까이 활동하며 지역 건축사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미쳤던 건축가인데,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근대 건축양식 한눈에=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건축양식들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아치형으로 둥글린 현관문을 들어서며 이처럼 설명했다. 독특한 외관만큼 건물 내부에서도 용도를 고려한 건축가의 세심한 의도와 배려를 볼 수 있다. 건물의 기본적인 향 배치는 서향이며, 주출입구의 둘레에 둥그런 공장제 검정 테라조판을 붙여놓은 모습이 눈에 띈다. 툭 튀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건물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주택 같은 분위기를 내려는 배 건축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관공서이면서도 일반주택의 규모와 상치되지 않도록 입면을 선적 요소로 분절 했으며, 외벽은 시멘트 몰탈 뿜칠로 마감했다. 네거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당을 지나면 대리석으로 만든 아치형 현관이 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현관 규모도 작다. 네거리에서 보이는 2층 베란다는 일반 가옥의 모습과 유사하며, 소장실과 접해있는 베란다의 경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향 빛을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파고라가 설치돼 있다. 내부는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배려가 두드러진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각각 검사실(실험실)로 들어서는 문과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고, 2층은 사무실이 곧바로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넓지않은 건축면적으로 인해 사적 공간이 최소화돼 있다. 출입구는 아치형을 이루며, 건물 외벽에 돌출된 상자 모양의 창틀과 서쪽의 강렬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 위에 설치한 수직 블라인드가 돋보인다. 버티컬 블라인드를 조작하듯이 내부에서 기계적인 조작으로 방향을 조정할 수 있게 해 내부에 빛을 더 들이거나 가릴 수 있게 해 당시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했다. 1997년 5월 27일에 1층 사무실 27.5㎡를 한차례 증축했다.

△`대전예술 114`원도심에 예술의 향기를 피우다= 대전창작센터는 국내최초로 근대건축물을 활용해 만든 복합문화센터다. 과거와 현재, 도시와 건축과 미술이 만났다. 개관 초기에는 100명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스터디`를 운영했다. 젊은 지역작가들이 모여드는 `대전 114`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다. 경제 논리에 의해 인류의 유물과도 같은 근대유산 건축물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사용하지 않고 관리만 하고 있었던 근대문화유산 건축물 활용에 대한 색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대전역과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내부 공간을 나눠놓은 벽이 적어 전시관으로 안성맞춤이다. 각 방들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으로 널찍하게 트여있어 전시실로 활용하기 좋다. 화랑이 밀집한 은행동 거리와 젊은 문화거리를 끼고 있는 지리적인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의 전시형태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간다. 대전의 최대 현안과제로 떠오르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구, 개발해 문화소외지역인 원도심에 예술의 향기를 피웠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건물을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수적인 미술문화를 현대적이고 진보적으로 발전시킨 대전창작센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근현대건축물을 넘어 이제는 대전 문화예술을 이끌어가는 구심점이자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나아간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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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창작센터. 사진=빈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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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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