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새벽이면 발 끝에 걸쳐있던 이불을 꼭 끌어안게 된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창문만 열면 뜨거운 공기가 기다렸다는듯이 밀고 들어와 재빠르게 다시 닫으며 그 뜨거움에 소스라치고, 휴가는 사무실과 차안이 최고라며 스스로 말하던 날이 어제인데 말이다. 여름이면 찬 음식과 에어컨바람에 꼭 배앓이를 했다. 올해는 한철 잘 지냈다 싶었는데 어김없이 여름 끝자락에 시작되어 따듯한 차로 나를 달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강경을 다녀왔다. 강경하면 먼저 젓갈의 고장이라는 말이 따라붙듯 젓갈도 구입하고 늦여름정취도 느껴보려 출발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역축제를 열고 있었다. 가을의 시작은 여행과 지역축제로부터이기도 하다. `밤의 여행`이라는 강경문화제는 일반 지역의 축제와는 다르게 근대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강경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알리고,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를 보고 배우는 `타임캡슐을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의 초대였다.

강경은 17세기 이전부터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의 하나였으며 원산과 2대 포구로 한 세기동안 호황을 누린 곳이다. 강경에는 강경역사문화원(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을 중심으로 도보로 근대건축물을 즐길 수 있는 등록문화재가 상당수 있다. 등록문화제 제10호인 영수당 한약방은 지상 2층 규모의 전통 한식구조로 상가의 기능을 더해 근대 한옥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측면은 비늘판벽으로 ㄱ자형 건물로 5량 구조이며 1층의 눈썹지붕과, 지붕의 장식재, 점포로 사용하기 위한 미서기문 등 1920년대의 건축형태를 볼 수 있었다. 강경상고의 교장사택은 1931년 축조된 것으로 지붕 끝이 높게 솟구쳐 날렵한 각을 이루며, 완만한 하단부의 지붕곡선은 독특한 시각적 효과로 그 자리를 내내 떠날 수 없게 하였다.

강경에는 미내다리도 있다. 일명 조암교(潮岩橋)로 불리었다는 미내교는 하천명이 미내천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당시 이 다리가 있는 곳은 큰 시내로서 바닷물과 서로 통하였다 하였으니, 조수가 왕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미내다리는 하천과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나, 하천법에 의해 구불거렸던 천은 직선천으로 정리한 것으로 하천 한편에 세개의 아치형 돌다리로 하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된 `야행` 축제는 충남에 존재하는 근대 건축과 문화재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였다. 충남에는 많은 축제가 열린다. 청양의 고추축제, 공주의 빛 축제, 금산 인삼축제, 계룡시의 군 문화축제 등 기억하고 나열하기에도 벅찬 30여 개가 넘는 지역축제가 펼쳐진다. 하지만 축제의 범위는 항상 한정되어있어 이를 즐기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15개 시·군이 갖고 있는 특성들을 통일된 마케팅으로 묶어 충남을 알리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타 도시와의 차별성으로 전국민이 찾아오는 충남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충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지역적, 역사적인 자원을 충남이라는 브랜드로 창출하여 15개 시·군을 묶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며, 둘째로 이를 위해 각 시·군이 함께 지속적으로 토의하며, 내 것이 아닌 우리 것으로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전문가 그룹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조로 완성도를 높여, 충남도가 관광도시로 전국에 알려질 수 있도록 홍보해야 할 것이다. 충남은 많은 역사적 자산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직 개발되지 못하고, 지역적 한계로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많은 보물같은 자원이 즐비하다. 이를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 강경북쪽 해발 43m의 옥녀봉 정상에 오르니 사면이 확 트여 강경읍내와 산 아래로 굽이치는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강경천과 만나는 금강의 길목과 더불어 넓은 들녘은 더 없이 풍요롭고 한가롭다. 이처럼 충남의 아름다운 풍경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 많은이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소망해 본다.

김양희 충남건축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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