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만비뇨학회 초청으로 타이중(臺中)시를 다녀왔다. 타이중시는 북쪽 타이베이와 남쪽 가오슝 사이에 위치한 대만 중부 지역의 중심 도시다.

근대 이후 발달한 도시로 철도나 고속도로 등 육상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IT 관련 연구소들이 많아 대전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주최 측이 초청 강사에 대한 예우로 타이중 소재 5성급 호텔 숙박을 지원해 줬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Lin 호텔이었다.

객실 규모에 비해 승강기가 부족해 다소 불편했지만 종업원들은 친절했고 아침 뷔페도 맛있었다. 하지만 Lin 호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객실 내 생수였다.

객실에 들어가 룸키를 전원부에 넣자 자동으로 창가의 이중 커튼이 열렸다. 처음 내 눈을 끈 것은 커튼 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도시 전망이었다.

창밖을 자세히 보려 다가가다 벽면의 삼성 스마트 TV 아래 놓인 생수가 눈에 들어왔다. 네 병이었다. `오호라, 여기 물 인심이 좋구나` 생각하며 생수 한 병을 따서 긴 여행에 지친 목을 축였다.

그러다가 객실 내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왕이면 시원하게 마셔야지.`생수 새 병 하나를 들고 냉장고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보니, 그 안에 생수 두 병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아니, 이건 뭐지? 그러면 여기는 하루에 생수 여섯 병을 무료 제공하는 건가. 아니야 내가 3박 4일 숙박이니 사흘 분을 한꺼번에 가져다 놓았는지도 모르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생수 한 병을 꺼내 시원하게 마시고, 바깥쪽에 있던 생수 한 병을 안에 넣었다.

원래 냉장고 내 생수는 안 쪽 공간에 있었지만, 새로 넣은 생수는 냉장고 문에 달린 선반에 두었다.

내심 호텔의 생수 제공 원칙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타이중 도착 다음 날, 대만 비뇨학회장 초청 만찬을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생수부터 보았다.

네 병의 생수가 당당하게 TV 아래 놓여 있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표면에 살짝 이슬이 맺힌 생수 두 병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론 냉장고 문 선반에 놓아둔 생수도 그대로 있었다. 매일 채워주는 여섯 병의 생수. 호텔의 생수 제공 원칙이었다.

여행하면서 식수는 필수이다. 모자라면 불편하고 아쉽다. 숙소에 밤늦게 들어왔는데, 마실 물이 없어 할 수 없이 수돗물을 마셨던 경험도 있다.

객지에서는 마실 물을 충분히 마련해 둬야 한다. 호텔에서 두세 병의 무료 서비스를 받는 경우, 마시지 않더라도 생수가 놓이는 위치를 그때그때 비워 놓아 일단은 충분한 양의 물을 확보하곤 한다.

그런데, 생수 여섯 병이 매일 제공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굳이 더 얻으려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정도면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양만 사용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3박 4일 동안 필자가 쓴 생수는 일곱 병이었다. 하루 두 병씩 제공하는 것에 비해 호텔 입장에서 불과 한 병비용을 더 들인 것이다.

충분한 생수 제공으로 인해 올린 호텔 이미지 개선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초저비용으로 달성한 고객 감동이다.

설혹 필자가 하루 여섯 병을 매일 같이 썼다 해도, 실제 추가 비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무료 서비스 기본 양을 줄인다면 호텔 전체로 보았을 때 절약되는 생수는 분명히 있을 터이니 그만큼 비용이 줄고 이익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익을 과감히 포기한 호텔 오너의 통 큰(?) 결단으로 얻은 고객 감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체 경영을 생각하는 오너 입장에서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대만 현지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들은 Lin 호텔 오너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호텔 이름인 Lin은 오너의 성인데, 수풀 림(林)의 중국 발음 영어식 표기이다.

자수성가한 Lin씨가 처음 시작했던 사업은 풀빵 장사였다 한다. 객실에 놓인 생수 여섯 병에서 Lin씨의 성공 비결 하나를 우연히 엿볼 수 있었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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