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한 상품을 문제 삼아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악의적 민원을 제기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을 블랙 컨슈머라고 한다. 이런저런 생트집을 잡거나 막무가내식으로 무리한 피해보상을 요구해서 업체를 곤란하게 하는 진상손님, 즉 손놈들이다.

블랙 컨슈머는 한국식 영어 표현이다. `black consumer`를 구글로 번역하면 `흑인 소비자`라는 결과값을 돌려준다. 캠브릿지 등 영미권 사전을 살펴봐도 아예 블랙 컨슈머란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흑인 소비자`라는 의미로 몇몇 문장에서 사용되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아마 블랙리스트와 같은 단어에서 `블랙`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장돼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것이라 추측된다. 일본에서는 블랙기업이란 단어가 좋지 않은 기업이란 뜻으로 쓰인다.

블랙 컨슈머들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을 더욱 곤란하게 했다. `파워블로거지`처럼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달라 요구하고 이를 업체가 거절하면 제품을 혹평하는 글을 올려 흑색선전(black propaganda)을 일삼는 사례가 많아졌다. 심지어 식품에 이물질을 넣거나 상황을 조작하기도 한다. 기업들도 이들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개발해왔다.

문제는 블랙 컨슈머를 대응하는 방식을 선량한 소비자에게도 악용하는 기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정당한 보상 요구를 거부하기도 한다. 일명 `돌려치기` 수법이다. 관련 업무 담당자를 일단 퇴사시킨다. 회사와 연관성을 차단한 후에는 퇴사한 직원이 블랙컨슈머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직장을 잃고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식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오히려 피해 소비자를 압박한다. 실직자가 된 직원을 동정하고 편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어느새 기업의 잘못은 잊혀져가고 기업과 인터넷 여론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소비자는 지쳐 분쟁을 포기하게 된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기업은 퇴사자를 은근슬쩍 복직시키거나 계열사에 승진 채용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근거도 없이 악성 소비자로 몰아부치며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일본을 보면 떠오르는 수법이다.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사실이 드러나면 회사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을 위험성이 있어 궁지에 몰렸거나 어지간히 악덕기업이 아니고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일본 불매운동의 가장 큰 동력은 억울하게 블랙 컨슈머로 몰린 이들의 분노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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