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공연기획자(스펙트럼 대표이사)
이상철 공연기획자(스펙트럼 대표이사)
어두운 연보라 색감의 조명 아래, 작은 무대의 키보드 앞에 어느 재즈 피아니스트가 앉아 있다. 그는 평범한 안경을 쓰고 단출한 옷차림으로, 헤어스타일 역시 단정하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로 밴드의 연주가 시작된다.

재즈 피아니스트는 건반만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표정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서서히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행복한 얼굴로 변화되고 있었다. 그 모습은 TV에서 방영하는 코미디프로그램 혹은 예능채널을 보면서 웃는 표정과는 다르게 보였다. 다른 무언가로부터의 자극에서 시작된 미소가 아닌, 스스로의 내면에서 시작된 행복을 담은 뭔가 특별한 미소였다.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는 옆의 베이시스트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미소 바이러스가 베이시스트에게 시선을 통해 번진 듯이 함께 웃으며 연주를 하였다. 음악과 함께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큰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무언가를 찾는다. 즐거운 영화 한편 혹은 맛있는 음식이 해결해주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덕분에 위로가 되기로 하지만,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위해 선곡된 음악들이 중요한 치료제 기능을 한다. 나의 여러 치료제 중 하나가 재즈음악이다. 재즈는 19세기 말 노예해방 이후 미국의 독특한 리듬 감각, 즉흥성을 가진 흑인 음악과 유럽 음악의 클래식 화성 구조의 요소가 섞이며 발달한 대중음악이다.

현재 나는 클래식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만, 많은 업무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듯이 재즈 연주를 감상하러 재즈바에 찾아가곤 한다. 재즈의 싱커페이션(당김음)을 특징으로 하는 오프비트(off bear: 통상 4박자의 제2박과 제4박에 악센트를 붙임)의 역동적인 리듬은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이들에겐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엔 최적의 선택일 것이다. 재즈의 싱커페이션은 클래식의 박자체계와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설명해서, 재즈의 `강약강약`의 악센트가 재즈에서는 `약강약강`의 악센트로 연주된다. 그래서 우리는 악센트의 위치만으로도 클래식과 재즈의 차이점을 느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반된 클래식과 재즈의 박자 시스템처럼 나의 클래식의 일상을 잠시 일탈하고자 본능적으로 재즈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유년 시절에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 더 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욕망처럼…. 나의 생활이자 일터에서의 고상함, 정숙함이 요구되는 클래식 공연장 객석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연주자들이 모여있는 클래식 음악세계와 달리, 시끌벅적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오가는 대화 소리와 유리잔이 부딪히는 백색 소음들 뒤에서 연주되는 자유로운 재즈의 연주가 내게는 최고의 위안이 되는 처장전일 것이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처장전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트로트 가요가 될 것이고, 누구에게는 댄스음악 혹은 팝송이 될 것이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스스로 위안이 되는 것을 찾아보기 바란다. 재즈바 안에서 뮤지션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연주하고 주위 사람들도 대화를 나누고 웃으며 연주를 감상한다. 칵테일 한잔과 함께 잠시 자유를 누리고 행복감을 느껴보라며 재즈 음악이 내게 무언으로 말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현실로 돌아와 사무실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을 틀어놓고 클래식 업무를 보고 있다. 다음 일탈을 꿈꾸며. 이상철 공연기획자(스펙트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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