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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정치가들로부터 자율적이어야 할 문화예산

2019-08-19기사 편집 2019-08-18 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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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특회계라는 게 있다. 본말로 하면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이와 관련한 예산을 필요한 지역에 적절히 배분해 왔었는데, 내년부터는 그 권한을 지방정부에 모두 내려 보내겠다는 방침인 모양이다. 예산 편성권을 이양하겠다는 뜻이다. 자치분권 종합계획의 일환이라고 한다.

자치와 자율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종국적으로 민주적 과정이라고 불러야 할 일련의 행동들은 그래서 좀 더 세밀하게 입안되고 시행돼야 한다. 이름만의 자치와 자율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오는 것은 다만 형식적으로 자율을 인정하고, 정작 내용면에서는 자율에 반대되는 일들이 전개될 때다. 혹은 자율을 핑계로 간접적인 강요가 이뤄질 때다.

균특회계가 어찌 처리될지는 실제 예산 집행을 두고 볼 일이다. 그것은 실제로 자치와 자율의 정신에 맞게 사용될 것인가. 균특회계에 의해 진행된 저간의 사업 방법은, 사업장소는 지방이되 예산은 중앙과 지방 정부가 공동 부담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중앙의 예산을 따오기 위해 지방에서는 어떤 명목으로든 사업을 진행해야 했던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제 지방이 굳이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게 돼서, 정말 중요한 사업은 배제된 채 지방 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선택된 몇 몇 영역에서만 예산이 집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없이 자기정치만 하는 지역 정치가들이 그 예산을 지역구 관리를 위한 종잣돈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문제인 셈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에 관한 한 관련 예산을 투표를 위한 통치 자금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가들이 많이 있어서, 여러 예산 집행기관의 업무 담당자들도 그 정치가들의 생떼와 같은 요구를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경우가 있다. 툭하면 공청회요, 툭하면 감사다. 그 정치가의 목적은 신문기사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것일 뿐이다. 그 후 실제 내용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민주주의라는 핑계로 이렇게 쓸데없는 회의들이 넘칠 때, 나랏일에 신념이라는 게 작용할 수는 없다. 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강요받은 결과의 한 예가, 예를 들면 속빈 강정과도 같은 문화예술지원사업이다. 지원될 만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을 거의 구분하지 않은 채 나눠주기 식 예산 배분을 하다 보니, 그 문화예술행사나 결과물들의 수준이 지극히 일천하다. 대전세종연구원에서 간행한 예술창작지원관련 보고서를 보니, 대전 시민들조차 관심 갖고 싶어 하지 않는 내용 부실의 사업에 시민들의 세금이 마구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지역 정치가들의 막무가내식 예산 배분 요구라면, 이런 예산은 지역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에 관한, 특히 예술적 자율성과 현실적 실용성의 문제가 충돌한다. 자율성은 창작자의 입장이고 실용성은 기관 공무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특히 문화예술에 관한 한은 지금 당장의 실용이라든지 효율성이라든지 등등의 가치관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두루 인정돼야 한다. 가령, 인문학은 돈이나 권력같은 현실적 효율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다. 지금 필요 없어 보여도 언젠가 필요하리라는 기대 속에서 공부해 둬야 하는 것은 인문학이 아니다. 언젠가 필요하리라는 기대로 하는 공부는 자기경영학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학은 그냥, 무조건, 지금 주어진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학문이다. 광야에 서 있는 쓸모 없는 나무 한 그루에 대해, 그래도 언젠가는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역할이라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문학의 정신이 아니다. 광야의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제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나무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뜻이다. 나무는 누구를 위해 있는 나무가 아니라 제 자신으로 그 자리에 있는 나무이니까. 균특회계 예산으로 진행될 문화예술지원사업에서 정치가들이나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문화예술을 망치는 일만 그들은 하게 될 것이다.

박수연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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