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러한 것들은 진짜일까. 이렇게 나를 내세우고 광고를 해야 모두가 나를 알아주는 것일까.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나는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걸까.
마치 나를 광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요즘이다. 이렇게 나를 내세우고 광고 하다 보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내가 중심인 것 같은 착각이다. 우리 주변에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일 수도 있고, 비즈니스 관계에서 인연을 맺거나 혹은 직장에서 동료 혹은 선후배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나 성취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성공이 절대적인 선이며, 자기가 1등이 아닌 경우에는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주변인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존재한다. 자신의 상사에 대한 충성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투자이며 주변의 모든 동료와 부하들은 그를 위해 몸을 내던져야 한다. 자신이 얘기 할 때 모든 이들은 경청해야 하며, 결코 타인이 이야기에 끼어 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결제 시스템은 본인을 경유해야 하고, 결정 또한 본인의 의견이 관철 돼야 한다. 비즈니스 관계라면 서로 사이를 멀리하면 그만이지만 직장에서 이런 사람을 상사로 두고 고락을 같이 한다면 이 보다 더한 고생이 없다. 상대방은 선택을 해야 한다. 굴복하던가 아니면 안보고 살지. 필자의 주변에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이야기 하면 감동을 주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 이런 분들이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나서서 재촉하는 법이 없다.
조금 뒤로 물러나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 상대방에게 절대로 `내가 더 낫고, 더 막강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신세한탄을 하는 법이 없다. 다만 약간의 자조 섞인 위트로 마감을 한다. 미주알 고주알 하소연 하는 대신 지금보다 훨씬 심각할 수도 있었다며 불행에 대한 말을 아낀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상대방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 시킨다. 어떻게 그렇게 할까. 바로 `공감`이다. 맞장구도 잘 치고 필요할 땐 수다도 잘 떤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편`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절대로 우위에 서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말투는 부드럽고 세련돼 있으며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절대로 약하거나 과소평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능력자이며 대단한 성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절제된 겸손함을 통해 편안한 동료애를 유발하지만 결코 자의식이 부족하거나 뭐가 아쉬워서 상대방의 동정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성과를 알기 어렵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으며, 거꾸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들의 성과는 오직 그들과 관계하는 그룹에서만 공공연히 부러움의 대상이 될 뿐. 그들과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기 어렵다. 그들의 실패는 동업자들도 알기 어려우며, 오직 그들 자신만이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들의 실패는 오직 그들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굴욕으로 숨어있을 뿐이다. 그들은 히든챔피언(참조: Hermann Simon, 동명의 저서)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필자의 생각에 공감이 가는 분이 있다면 수전 케인의 `Quiet`, 마티아스 뇔케의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Understatement`를 권한다.
권육상 대전센텀병원 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