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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칼럼] 경력간호사가 된다는 건

2019-08-13기사 편집 2019-08-13 15: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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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전주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2중환자실 파트장

처음부터 간호사가 꿈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추천으로 간호대학을 나오고 가톨릭 대학교 대전성모병원에 입사해서 어엿한 간호사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첫 발령을 중환자실로 받았다. 그때는 선배들에게 혼나지 않고 의사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나에겐 병원을 다니고 환우를 돌보는 일이 큰 과제처럼만 느껴졌다.

3년차가 되기 전까지는 병원을 다닌 다기 보다 버티기에 가까웠다. 3년차 쯤 됐을까. 혈액종양내과 환우가 중환자실로 입실을 했다.

환우 침상 정리를 하면서 네임카드도 보지 않고 "할아버지 자리 정리해 드릴게요"라고 하니 환우가 버럭하며 '나 할아버지 아니에요'라고 화를 내는 게 아니겠는가.

그제야 네임카드를 보니 52세였다. 외모만 보고 어르신이라고 착각해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동안은 환우를 이름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또는 질환명이나 침상번호로 불렀었다.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환우에게 한번 혼이 나니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됐다.

나는 중환자실에 입사해서 줄곧 중환자실에서만 근무를 했다.

중환자실은 병을 회복시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지막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경력간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임종을 맞이하는 환우를 봐도 놀라지 않았다.

누군가의 슬픈 과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임종을 바라보는 보호자의 시큰둥한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함께 슬퍼해 주지 않았다.

어느 날 한 환우가 임종을 맞이하는데 아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환우의 이마와 본인의 이마를 맞대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가세요'라고 임종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눈가가 시큰거렸고 환우가족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멋모르던 나는 그저 간호면허를 따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해했고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경력간호사가 되면서 환우가 질환이나 침상번호가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환우가 아파하면 안타깝고 불편해하면 해결해주고 담당의의 처방이 환우를 힘들게 하면 중간에서 중재도 했다.

후배간호사가 생기면서 내가 겪어온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해 모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제때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화가 덜 났다.

어느 곳에서든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느낄 수 있는 감정에도 과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믿으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판단도 생겼다. 병원생활 모든 일은 경험으로 남게 되고 힘든 경험일수록 병원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가끔 후배간호사들이 사직을 고민할 때는 지나온 내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를 해준다.

겪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대리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은 많은 위로를 느끼며 고비를 넘길 원동력으로 삼기도 한다.

너무 힘겨워하는 후배에게 모든 선배간호사들이 그 시간들을 견뎌냈고 이겨낸 사람만이 현재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언젠가 힘겨워하는 후배들에게 뒤에서 밀어주고, 같이 발 맞춰 같이 가는 선배가 될 수 있다고 도 말이다.

전주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2중환자실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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