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낭독회 하러 전주에 다녀왔다. 카페 안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시는 L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간 자리였다. 선생님과는 2년 전 몽골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함께한 선생님 두 분이 더 참석해주셔서 뒤풀이 자리는 자연스럽게 몽골 후유증으로 이어졌다.

L선생님은 여행으로는 좋았지만 몽골에서 살라면 살 수 없을 거라고 했고, 23일에 여섯 번째 몽골 여행을 앞둔 K선생님은 다음 생은 몽골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희망했고, J선생님은 여행은 어디든 좋지요 하면서 소주와 맥주를 말았다.

나에게 몽골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꼽으라면 사막에 누워 봤던 별이다. 나는 그 기억으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라는 산문집에 `별의 폭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폭설이 내리는 것처럼 별이 빼곡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막에 누우면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둥글게 하늘이 펼쳐진다. 그래서 발을 들어 발바닥 즈음에 있는 별을 콕콕 찔러볼 수도 있다. 함께 갔던 선배는 발 아래로 빨려들어 갈 것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그랬다. 다녀온 지 2년이 지나도록 나는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K선생님이 여섯 번이나 몽골을 다시 가는 이유, 우리를 가이드 했던 소설가가 몇 개월 동안 그곳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싱싱한 인간성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원 위, 낯선 게르에 날 위한 차 한 잔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몽골 초원의 게르와 게르 사이는 멀다. 그렇기에 찾아오는 손님을 박대하면 그 손님은 다음 게르를 찾다가 죽을 수도 있다. 게르 주인은 자신이 집을 비워도 게르의 문을 열어두고 혹시나 찾아오는 손님이 굶지 않도록 음식과 차를 준비해 둔다. 지나가는 야생짐승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마을 먼 곳의 구유에 항상 물을 채워두고, 말을 타고 달릴 때도 새의 알을 밟지 않도록 살펴야 하며, 집 근처를 지나는(초원 앞 본인의 시야가 닿는 곳) 자동차나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달려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이 가진 그런 약속을 보면서 나의 안에 묵직하게 박혀 있던 콘크리트가 와장창 깨졌다. 화장실이 없어 우산으로 임시 화장실을 만들고, 비가 내리는 게르 안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침대 밑에서 함께 잠드는 몽골. 여기서 내가 움켜잡고 있던 것들은 사소해지고, 절대적인 경계가 흐릿해지던 몽골. 나는 거기서 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다 옳다고 할 수 있나.

K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호이가(우리 가이드) 처갓집이 여름이면 **지역에 게르를 지으며 지낸다고 해서 일주일 지내다 왔어요. 샤워도 못 하고, 전기도 없어서 할 것도 없었어요.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는 말살됐다고 여겼던 자유를 느꼈어요. 거기서 나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몽골에 가요.

올해 여름휴가를 내지 못했다. 2년간 여행다운 여행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어렵게 4일 휴가내고 이쪽저쪽 휴일들을 붙여 12월에 일주일 남짓 다녀올 예정이다. 계속해서 나는 나를 미지로 밀어 넣는다. K선생님 말처럼 내가 나일 수 있는, 누구도 교정하지 못할 자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손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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