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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휘감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탐구

2019-08-12기사 편집 2019-08-12 15: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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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개인전 '언어는 배신하지 않는다'

첨부사진1전시전경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한 전시가 열린다.

우민아트센터는 9월 21일까지 제 17회 우민미술상 수상자인 이수진 작가의 개인전 'Language Is Treacherous 언어는 배신하지 않는다'를 개최한다.

작가는 전시명을 통해 이번 전시에서 여러가지 번역의 방법과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 제목은 영어로는 'Language Is Treacherous (언어는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인 반면 한국어 제목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지어 상반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전시명을 영어-한국어 배열로 번역처럼 배치했지만 실제로는 번역이 아니라 각 언어에 대한 불신과 믿음을 표현하는, 상반되는 의미의 두 문장이다.

이수진 작가는 오랜 해외 거주 경험에서 비롯된 언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텍스트,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을 해왔다. 이 작가는 언어 간의 번역, 말에서 글로, 글에서 말로의 이동(번역)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의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의 공간에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언어의 경험을 확장하거나 언어 체계 바깥의 미묘한 공간을 재확인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말하기'만큼 '쓰기'도 시간성과 연결된 신체적인 행위임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거나 목소리의 탐구를 위한 방법론으로 텍스트를 부각시킨다.

작품 'ephemeras'는 영어와 러시아로 구성된 파편적인 텍스트와 러시아 콜롬나에서 촬영한 영상과 함께 베네딕트 예로페에프의 책을 손으로 베껴쓰는 소리가 담긴 오디오 트랙으로 구성했다. 이 작업은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인물들이 상호 소통을 위해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대화한 기록을 재구성한다. '부엌 낭독(A Kitchen Reading)'은 작가가 영어로 쓴 자전적 텍스트를 소리 내 읽고 옆에 앉아 있는 작가의 러시아인 친구가 다시 러시아로 통역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텍스트가 쓰기, 읽기로 번역되는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셉템버 (September)'는 몸과 언어를 묶어 생각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에 주목한 작업으로, 출생지나 인종과 같은 생득적 요건에만 의존해 언어구사 능력을 평가하고 대우나 처우에 있어 차별을 두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그린 모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작업이다. 작가는 영어 유치원의 강사 채용 기준이 담고 있는 모순적인 위계 구조 내에서 애매한 위치를 점유한 탓에 '원어민'을 연기해야 했던 '셉템버'라는 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언어와 불가분한 관계인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인물의 내적 갈등을 드러낸다.

'이것은 아이들은 위한 이야기이다. 진짜 있었던 사랑 이야기'는 영어 사전에 나오는 예문들에서 발췌한 영어 자막이 '원문'으로 한국어 내레이션은 '원문'의 '번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레이션은 '영어 원문'의 '번역' 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원문'으로 착각하게 한다. 영상이 완결적인 이야기 구조의 형태를 띠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나오는 영어 자막들이 '아이들을 위한 사랑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자막, 내레이션, 이미지가 각각 동일한 무게를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편집해 이들 사이의 경계를 교란시키고 불분명하게 흐트려놓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장면(A Sight No Tongue Can Describe)'작업은 두 개의 목소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무음의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영상작업이다. '소리 내 읽어주세요(Please Read Aloud)'는 특정 할리우드 배우의 더빙을 도맡아 했던 성우에 관한 텍스트 작업이며 작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신체로부터 분리된 목소리의 존재론적 의미 및 몸과 목소리와의 연관성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I don't know the ending'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에세이 'Writing'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뒤라스는 에세이에서 "쓰는 행위는 미지의 것을 향해 다가가는 행위"라고 말한다. 작가 이수진이 뒤라스 에세이의 한 구절을 작업명으로 가져온 데에는 그를 향한 오마주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쓰기와 지우기의 반복적 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밀물과 썰물의 왕복운동,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파편적 이미지들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어쩌면 평생 반복해야만 하는 예술가로서의 삶과 창작 과정의 고뇌를 은유한다.

작가 이수진은 메릴랜드 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을, 뉴욕대에서 퍼포먼스 스터디스와 스튜디오 아트를 전공했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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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I don't know the ending-Я не знаю, чем это закончится, 2017, HD 비디오, 흑백, 컬러, 유음, 6분56초

첨부사진3부엌 낭독 (A Kitchen Reading), 2018, HD 비디오, 컬러, 유음, 21분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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