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LH토지주택연구원장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LH토지주택연구원장
자치분권의 궁극적 목표는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왜 우리는 풀뿌리 자치를 추구하는가? 민주사회가 성숙하고 생존에 필요한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인간 속성에 기인한 것 같다. 유럽과 미국 등 먼저 근대화를 경험한 국가에 예외 없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실제로 이들 국가의 경우 거주지 인근 부지의 개발허가까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지역이 많다.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인가? 오래전부터 정부나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정책이 주민 반대에 부딪쳐 심각한 진통을 겪는 상황을 빈번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간 주민참여형 제도를 꾸준하게 확대해 왔지만 아직도 주민의 의식수준 변화에 행정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산업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산업사회의 관행에 젖어있는 행정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현 정부도 자치분권을 핵심정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아쉽게도 정부 출범 2년이 지난 시점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못 내는 듯하다. 오랫동안 고착화된 행정관행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종시가 선도모델을 만들고 있다. 세종시는 민선 3기를 시작하면서 `시민주권 특별자치시 세종`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자치분권특별회계를 신설하였고 주민자치회 제도의 전면 실시를 추진 중이다. 이미 주민 스스로 결정한 사업들이 자치분권 특별회계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 행정 권한의 상당 부분도 읍면동 단위로 이양될 예정이다.

시민의식과 주민역량을 갖추기 위해 `세종시 시민주권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소양교육 과정으로 `시민주권 바로알기`, 새로 임명된 주민지치회 위원 역량강화를 위한 `주민자치회 과정`, 읍면동별 마을계획 수립을 위한 `마을계획 과정`으로 구성된 `2019년 세종시 시민주권대학`을 성황리에 마쳤다. 시민주권대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열의와 역량은 행정과 참여 전문가를 감동시켰다.

어떻게 세종시의 행정과 시민 역량이 다른 도시를 앞서게 되었는가?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도시재생사업 추진과정에서 습득한 경험과 노하우가 뒷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종시 도시재생 행정은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다르다. 우선 어느 지역보다 현장 중심적 행정체계를 구축하였다. 도시재생 전담조직인 도시재생과를 현장에 배치시켜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행정을 펼치고 있다. 격주로 이루어지는 도시재생과 주간업무회의에 주민대표를 참석시켜 행정과 주민대표가 함께 업무협의를 한다. `화요회의`로 불리어지는 이 회의는 2015년 7월에 시작하여 2019년 7월 현재 75회를 넘어섰다.

주민과 전문가 100인으로 구성된 `조치원발전위원회`를 실질적 거버넌스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업 발굴, 자문, 의결이 모두 이루어진다. 2019년 7월 현재 110회를 넘어섰다. 이 외에도 실무적으로 부서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사안이 생기면 시장과 주민대표가 함께 주재하는 `나눔회의`를 개최하고 있고, 도시재생과, 참여공동체과 등 여러 부서는 사안별로 전문가와 주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협의체를 운영하여 왔다.

주민의 자발적 활동 중심에는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있다. 중간지원조직인 센터는 주민 스스로 자기지역을 재생해 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준다. 센터가 운영하는 도시재생대학은 주민역량 강화나 도시재생사업의 지원을 넘어 주민이 직접 재생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한다. 세종시 풀뿌리 민주주의는 그동안 쌓인 협치행정 기반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지원센터와 시민주권대학이라는 중간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행정은 지원하는 위치에 있다. 그것이 성공비결이며 다른 지자체와 전문가로부터 주목 받은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 풀뿌리 자치는 시대 흐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종시가 조금 앞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중심에 있는 협치행정과 중간매체를 주목한다.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LH토지주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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