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82)는 미국출신의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UCLA에서 지리학을 가르친다.

생리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등 폭 넓은 학문세계가 여러 명저에 투영돼 있다.

2005년 영국의 `프로스펙트`와 미국의 `포린 폴리시`가 공동선정한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지식인` 중 아홉 번째로 선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명저 `총, 균, 쇠`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도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마침 올 여름 휴가 기간에 그의 최신작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를 접하고 깊은 감명과 위안을 받았다.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에 대한 준엄한 경고 메시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대변동…`은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의 국가가 과거에 어떠한 이유로 위기에 빠졌으며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지금 다른 위험인자는 없는지 진단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에 뛰어나고 각국에 많은 인맥을 둬 이들 나라에 대한 사료와 데이터를 수년전부터 수집했다.

최근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경제보복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상황에서 나는 이 책의 일본과 독일편을 먼저 정독했다.

`대변동…`에 따르면 독일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으로 빌헬름 2세와 히틀러 등 몇몇 정치인의 오판으로 자국민은 물론 주변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불행을 떠넘겼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내부에서도 전범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과 판사 대다수가 나치 부역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독일인들은 "수 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소문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며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이라고 서슴없이 내뱉었다.

나치범죄를 청산할 수 있었던 건 프리츠 마우어 검사장이 1949년 부임하면서 부터다.

그는 `연합국이 기소한 나치 지도층에만 국한하지 말고 평범한 독일인도 기소한다`는 원칙을 평생 지켰다.

사소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하급 나치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는다 치더라도 그의 잘못을 만천하게 공개했다.

철저한 자기반성은 1970년 12월 7일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나치에게 수백 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한 것에서 절정에 달했다.

브란트의 용기는 독일이 과거의 허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훗날 동·서독 통일은 물론 EU 최강국의 밑거름이 됐다.

다이아몬드는 일본에 대해서는 2개의 장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다뤘다.

앞선 장에선 1850년대 일본이 굴욕적으로 개항했지만 와신상담 훗날의 강성대국을 꿈꾸며 메이지유신을 성공리에 추진한 과정을 그렸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일본에 맞게 잘 가다듬어 강대국의 꿈을 이룬 일본은 그러나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과도한 자만심에 빠졌다.

결국 젊은 군인들의 오판으로 진주만을 공격한 뒤 패전국으로 전락했다.

다이아몬드는 `장래에 일본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이라는 장에서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李光耀)의 입을 빌어 일본의 자성을 촉구했다.

`독일인과 달리 일본인은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제에 내재한 독소를 제거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일본인이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리콴유는 일본이 위안부납치, 생체실험, 난징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일본의 장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이아몬드는 일본 `코스모스상`을 받았을 정도로 일본에도 잘 알려진 지성인이다.

그는 과거사 부정, 자원 과소비, 여성의 성차별, 폐쇄적인 이민정책, 정부부채 등의 문제가 누적되면 일본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이 석학의 충고를 받아들여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조속히 나와 주길 바란다.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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