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경제적 행위이다. 하지만 경제 원리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을 수용하거나 타협 및 변형하며 상당히 주관적으로 소비행동을 한다. 사회학자 미첼레티는 소비자가 개인의 이해만이 아니라 정치적, 윤리적, 환경적 측면에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적 이해를 고려해 선택하는 것을 일명 `정치적 소비`라고 정의한 바 있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은 대표적인 정치적 소비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신념을 토대로, 구매력을 무기 삼아, 사회와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힘을 얻고 행사하는 정치행위 자체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소비와 정치를 연결하는 것을 우려하고, 불매운동을 이성이 결여된 감성적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불매운동은 특정 집단이나 단체에서 주도되기 보다는 개개인들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순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경제주체로서 자신들의 힘을 인식하고, 이를 창조적이고 자유롭게 활용함으로써 민주적 자본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양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매운동 사이트에 일본 관련 제품 및 그에 대한 대체상품 정보가 게시되고, 이러한 정보가 SNS를 통해 공유된다. 독려는 괜찮지만 강요는 안되며, 비장하기보다는 즐기자는 불매운동 지침이 만들어진다. 포스터, 표어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은 홍보물들이 제작 및 공유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산한 유니클로 매장 사진이나 일본여행 취소 인증사진이 공유되고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른다. 소비자들의 집단지성의 힘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매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참여자 간 소통과 연대`, 그리고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번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좋은 시험대이다. 이번 불매운동이 우리나라의 민주적 자본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기업과 글로벌 시장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소비의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진명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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