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도시에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아마도 공원이나 놀이터, 혹은 쇼핑몰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공원은 다수의 시민이 모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목적에 따라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공동체성이 강한 놀이터는 아이들이라는 특정 세대에 한정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쩌면 쇼핑몰이야말로 현대 도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 공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공간에서 모든 시간과 경험이 자본과 소비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공동체 본래의 의미가 발현될 수 없는 구조이다.

그 외에 최근 종종 언급되는 공간이 학교 공간이다. 대학은 그 잠재성에 비해 지역과의 연계에 아주 인색하거나 편향되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 위주의 학습공간으로 치우쳐 있다. 그나마 초등학교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활동을 즐기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실제로 많은 초등학교에서 학교 개방이나 공간을 활용한 실험적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서울시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에서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몰놀이장으로 바꾸는 실험을 5년째 하고 있다. `성북문화바캉스`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형풀장을 비롯해 유아풀장, 슬라이드,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부스, 공연 등을 준비하여 단순히 물놀이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동네 워터파크의 경험을 제공하는 한여름날의 축제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여러 자치구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성북구 고유의 특색을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애초 `성북문화바캉스`의 취지는 소박했다.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여가 생활에서 소외되는 이들에게 짧은 기간이라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맞벌이부부나 자영업자, 그 외 소외계층 가정은 제대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에도 할머니와 사는 초등학생이 몇 년 동안 수영장 한 번 가지 못했는데, `성북문화바캉스`에 와서 정말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성북문화바캉스`로 변신한 초등학교 운동장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어우러지는 통합과 교류의 장이 된 셈이다.

지역사회에서 학교는 여전히 담장이 높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다니는 학교 고유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제 초등학교는 각 지역의 다음 세대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공간으로서 지역사회의 매개와 연결의 공간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방과후교실 및 돌봄교실, 그 외 특화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개방하여 주민들의 생활체육이나 산책과 운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시민들과 함께 공통의 경험과 자원을 축적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 교사와 지역예술가, 학부모와 활동가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교육청이나 자치단체 등의 사업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서로 필요한 사업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과 자치단체는 이러한 사업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성북문화바캉스`처럼 초등학교 운동장이 지역의 공공공간으로서 누구나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다면, 지역 문화의 쇠락이라는 흐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멋진 경험과 추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과 추억이 어떤 것인지는 더 중요하다.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파나 노인에게서 원숙미 같은 것을 보고, 아이들의 매력을 순결한 눈으로 본다." 어쩌면 지역의 공공공간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시선을 갖도록 하는 출발지점이 될 것이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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