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소년병] 최인훈 지음/문학과지성사/ 597쪽/ 1만 7000원

"그는 세계라는 어질머리(어질병)와 자기 사이에 책이라는 완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음악처럼 읽었다. 등장인물이라는 이름의 선율들이, 그의 책의 페이지 위에서 아름다운 어질머리를 풀어나갔다. 최인훈,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중"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문학의 언어로 표현한 4·19세대 작가 최인훈. 그가 소설에서 표현한 사회적 모순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 무섭도록 현재적이다.

지난달 23일 최인훈 1주기 `추모의 밤` 행사에 맞춰 그의 작품을 재구성한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이 출간됐다.

최인훈 소설의 경계 없는 세계를 다시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이 책에는 등단작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1959)`와 최인훈 전집에 미수록됐던 표제작 `달과 소년병(1983)`,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온 중편 `구운몽(1962)`,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반영된 `느릅나무가 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 제1장(1970)` 등 총 9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렸다.

이 책의 책임 편집과 해제를 맡은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최인훈의 소설은 관념적인 것, 분단의 연대기에 한정된 것으로 좁게 읽은 기존의 평가를 바로잡는다"고 말한다. 그의 소설은 무섭도록 현재적이고 실험적이어서 장르와 형식의 문제를 넘어 제도적 장치를 둘러싼 민족 국가의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는 행동을 거부하고 철저한 무위를 주창하는 청년 모임이 불온 단체로 오인받아 국가 권력의 개입을 통해 해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무해·무력한 공동체조차 용납하지 않은 당대 현실을 드러내는 단편소설이다. 흥미롭게도 이 `한량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남성 인물들의 허위와 남성 우월주의는 여성 인물 `키티`에 의해 드러난다.

"여자들한테 그런 멋대로의 풀이를 붙인다는 건 남자들한테도 안 좋아요. 이쪽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변히 굴겠어요. 제가 말씀해드리지요. 여자는 남자와 꼭 같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들어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짐승이었지요."

최인훈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장면들은 당대 사회의 정치적, 젠더적 층위를 드러낸다. 지배자에게 당한 탄압과 혐오를 사회적 약자에게 내리 물림하는 방식은 그가 소설을 썼을 때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있는 구태다. 최인훈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에서 은폐된 상상적 현실을 끄집어내는 `소설적 고고학`을 선보인다.

사회적 모순들은 모습만 바꿨을 뿐 재생산되고 있기에 그의 소설은 늘 새롭게 읽힌다. 우리는 `달과 소년병`을 읽으며 다시금 되새기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문학은 끊임없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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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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