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방학은 예년에 비해 다소 분주하다. 사회복지기관 현장평가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전문가로서 평가위원에 위촉됐지만, 현장을 공부를 하겠다는 개인적 목적도 있다. 현장평가는 연구실에서는 알기 어려운 현장의 역동성을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이러한 이유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연구실 밖을 나가곤 한다. 하지만 가끔씩 사회복지의 현장은 아직 감성과 이성간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음을 실감한다. 복지에 대한 열정은 넘치는데 이를 체계화, 과학화시키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기관이 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서비스 대상자의 접수부터 종결 및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들이 기록돼 있지 않은 사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계획서나 결과보고서가 없는 사례, 있더라도 계획서와 결과보고서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성되는 사례,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업무의 연속성을 잃어버린 사례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적지 않은 예산을 들였음에도 대상자나 지역사회의 변화가 아닌 이용자의 만족도라는 단순지표로 사업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주도하는 시설운영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한 원인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사회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시스템의 태생적 특성과 발달경로를 지적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1970대 초까지 거의 모든 영역이 외원과 민간부문에 의존했다. 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서비스 관련법이 제(개)정 됐지만 민간주도라는 태생적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우리의 사회서비스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각종 바우처사업이 시작되고, 아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지역아동센터와 어린이집이 활성화됐다. 또한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실시는 노인요양시설 수의 급증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서비스는 민간에서 생산되고 공급된다. 정부는 재정의 공급자일 뿐 규제자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정부가 규제자로서 역할을 방관한 것은 아니다.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한 평가제도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기관은 3년마다 정부의 평가를 받게 됐다. 얼마 전에는 비인가 시설을 모두 인가 시설로 전환시킴으로써 정부나 관련단체의 감시감독을 받도록 했다. 현 정부는 서비스 공급시스템의 공공성을 확충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원을 광역지자체에 설치하고 있다. 공공성 확충의 방법은 이제 시작됐기 때문에 효과를 판단하기 이르다.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바로 평가시스템의 도입이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아 온 사회복지기관들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화된 모습을 갖췄다. 평가가 실시되기 이전 헌신과 열정에 의존했던 기관들이 이제는 과학성을 갖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평가를 하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들이 보인다. 현장의 실정에 부합하지 않은 지표는 수정하면 될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일부 피평가기관이 평가자체를 `불가피한 의례`로 받아들이는 형식주의다. 이는 평가의 피드백이 효과적 못한데 기인한다. 현재와 같이 우수기관에 약간의 금전적 인센티브와 하위기관에 보수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방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몇 몇의 개인시설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를 거부하는 사례다. 평가는 감사와 다르다. 기관의 잘못을 파헤치고 처벌을 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계점을 극복하고 전국적 표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감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애, 사랑, 헌신 등 규범적 동기가 근저에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에 비대칭적으로 의존하다 보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모습을 갖지 못한다. 과거 감성에 기초한 자선활동이 이제 동력을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현대의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성과 객관성을 부여할 이성이다. 평가는 기존의 감성에 이성을 접목시키는 효과적 채널이다. 감성과 이성이 균형 잡힌 사회복지현장을 기대해 본다. 박순우 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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