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더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스포`는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앞으로 일어나는 일이나 주요 사건을 관객이나 독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정보를 뜻한다.

영어 spoiler에서 나온 용어로, spoil은 `망치다`, `못 쓰게 만들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 속담에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가 있는데,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스포는 그 어원 자체가 부정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내용을 미리 알게 되면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이야기 전개나 스토리 반전에 김이 빠진다.

특히 극적인 반전이 있는 스토리 구성을 가진 추리물이나 공포물의 경우 스포는 그 창작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의 주요 부분을 빼앗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쓴 게시물에 결정적인 스포가 있을 경우 `스포주의`라는 문구를 제목에 덧붙이기도 한다.

스포를 일부러 찾을 때도 있다. 스토리 구성이나 전개를 미리 아는 게 그 창작물을 즐기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다.

대부분의 오페라 공연에서 공연 팸플릿에 관객 편의를 위해 줄거리를 요약해 놓는다.

나아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주요 감상 포인트를 친절하게 적어 두기도 한다. 이 경우 작품 이해와 감상의 격을 높이는 긍정적인 스포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과 관련해 어느 정도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오히려 그 대상에 대한 흥미가 증가한다. 좋은 예가 영화 예고편이다.

예비 관객의 흥미를 유발해 관람 욕구를 높이기 위한 잘 계산된 스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스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지내다 보면 때로는 자연스럽게 스포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며칠 전 관람했던 영화 `알라딘`이 그런 경우였다.

이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출시된 바 있고, 더 멀리는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 있는 내용이기에 대강의 줄거리와 결말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사전에 스토리 구성이나 전개에 대해 이미 스포가 된 상태에서의 관람이었다.

오히려 여유 있게 편한 마음으로 스토리 보다는 디테일을 즐기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직 보지 않은 독자들에겐 약간의 스포가 되겠지만, 영화 감상에 방해되지 않을 수준으로 몇 가지를 살짝 풀어 본다.

공주의 시녀 달리아와 램프의 요정 지니 사이에 흐르는 썸타는 분위기, 주관이 뚜렷한 자스민 공주가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

지니가 `어버버` 하다가 작명한 아바브와 왕국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알리 왕자로 가장한 알라딘이 보여주는 내면의 갈등 등을 즐기다 보니 영화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면서 토정비결이나 타로 카드로 운을 점쳐 보기도 하고,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나 역술가를 찾아 복채를 내밀며 미래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앞날에 대한 스포를 찾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스포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고, 비록 바꿀 수 없을지라도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해진 미래를 알고 살아간다면 스토리를 아는 영화를 감상하듯 편한 마음으로 디테일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미래를 아는 게 디테일을 즐기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비록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디테일을 즐기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노력과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으로 내 앞에서, 때로는 옆에서 다가오는 사물과 사람들을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 속에서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꿈꿔 본다.

김대경 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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