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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상의 문화산책] 그냥 고수(鼓手)가 되고 싶은 사람

2019-07-30기사 편집 2019-07-29 19: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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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류달상 작가
북치는 일이 그의 직업이었다. 세간의 말로 고수라고 한다. 북치는 일을 오래하였고, 우리나라 우리 지역은 물론, 유럽의 몇 나라에 그의 북소리를 널리, 크게 울린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의 이야기 끝에 어떤 고수가 되고 싶은가, 물었다. 방송 진행자는 대담자를 앉혀놓고 맹숭한 도덕적 추상화를 그려보여야 할 때가 있다. 소울 아웃된 멘트는 대개 추상에 가깝다. 도덕법칙에 매달려 사는 정의론자나 정치가들이 좋아하는 화법이다.

질 들뢰즈는 도덕법칙을 전복하는 두 가지 길을 일러주었다. 원리들로 향하는 상승의 길과 거꾸로 하강하는 길이 그것들이다. 절차를 어김없이 지킴으로써 마비효과를 가져오는 준법파업이 전자의 예라면, 아예 조롱과 해학으로 나가는 것은 후자의 예다. 고수는 고수답게 위로 상승하는 쪽을 택했다. 고수의 대답은 질문보다 더 추상에 가까웠다. '그냥 고수가 되고 싶다. 북을 치지만 나는 아직 고수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그의 존재가 태산보다 우뚝하게 스튜디오를 채웠다. 명창(名唱)들과 어울리며 명고(名鼓) 소리를 듣는 그는 정말, 고수(高手)였다.

작년에 갑자기 방송 진행자가 되었다. 삶의 시간표에 적혀 있지 않았던 방송 진행. 그러나 어느 구름이 비를 머금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홉 달째, 주말을 빼고 매일 90분 동안 대전국악방송의 저녁 프로그램 '금강길 굽이굽이'를 진행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크게 실감하는 것은 두 가지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지방을 무대로 일하는 예술가들은 더욱 그러하다는 것과 그러한 사태들과 예술적 순수성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화용의 언어가 사태진리를 중시할지라도 명제진리마저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이 사태이고 현실이라면 예술적 순수성이라는 명제는 예술가의 혈관에 뜨거운 피를 제공하고 순환시키는 추상의 심장이다.

다들 아는 얘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내년도 대전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 사업이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소식이다. 예술 생산과 수요에 기여하는 돈은 건강한 돈이다. 거기에 쓰이는 돈은 지금보다 많아져야지 적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기대와 거꾸로 전개되는 사태 앞에서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 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저 고수처럼 예술가들에게 지원될 돈의 곳간이 비어갈 때 진정한 예술가들은 원리로 상승한다. 예술은 돈을 만들지만 돈은 예술을 만들지 못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만 원리로 상승하는 아이러니의 세계가 예술가의 세계다.

방송 일이 천업이 아니고, 그 세계의 이방인으로서 미진한 능력에서 때때로 오는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행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은 가난하지만 영혼이 부자인 예술가들이 전해주는 에너지다. 이것은 세속적인 것의 반대가 아니라 세속적인 것의 가장 한가운데서 부딪히는 경험이고 충동이다. 감각의 폭력이란 바로 이런 경험과 충동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이미 고수이면서 새삼 고수가 되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을 모방해본다. 문학을 하고 싶다.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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