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마에서 중부 지방엔 최고 300mm 물폭탄이 예상된다. 모쪼록 이로움만을 남기고 가는 장마가 됐으면 한다.

여름이 되면 북태평양 바다 위에서 생긴 따뜻한 공기 덩어리가 우리나라로 올라온다. 북동쪽 오호츠크 해에서는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내려와 부딪쳐 한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많은 비를 흩뿌린다. 남쪽의 열기와 북쪽의 열기가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조금 다른 남과 북의 대치를 그리고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장마의 시작과 끝이다. 6.25가 발발하자 외가 식구가 찾아와 한 집에 머무르게 되고 어린 아이인 `나`는 두 가족의 대립을 바라본다. 삼촌이 빨치산이고 외삼촌이 국군이다. 장마라는 계절적 남과 북의 대립 속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남과 북의 대립을 절묘하게 녹여냈다.

갈등은 첨예하지 않아도 슬금슬금 짜증을 유발한다. 장마가 그렇다. 그다지 기온이 높지 않아도 왠지 불쾌하다. 습도가 높아 몸의 땀도 잘 마르지 않고 끈적끈적하게 된다. 이불과 베개, 옷도 눅눅해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계절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갈등이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수 있다. 정반합의 변증법이 역사 발전의 동력이다.

장마철 내리는 비는 연강수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산지형 국토로 이뤄진 우리나라에 장마는 한 해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생명수다. 장마가 없었다면 한반도의 풍경은 마른 풀이나 맨땅으로 뒤덮인 사바나 초원이나 고비 사막같은 황량한 모습이었을 지 모른다. 토양에 과다하게 쌓인 무기염류도 씻어내려 농사에 도움을 준다. 산과 들이 촉촉히 젖어 산불 걱정도 줄어든다. 요즘에는 천연 미세먼지 정화기로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언제 작별을 고해야 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세차게 우산을 두들기는 빗방울 속 걸음걸음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낡은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기상청은 꼭 10년 전인 2009년부터 장마예보를 중단했다. 한반도 기상 변화가 이유다. 그만큼 최근 한반도에서 과거와 같은 장마를 보기 어려워졌다. 이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장마`라는 단어는 몇 십년 후 문학작품에서나 찾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용민 지방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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