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전이응노미술관에서는 `감각의 교감: 오감으로 만나는 이응노 예술`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군상, 문자, 추상, 미디어 설치 등 대부분 관객들이 작품에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과거에도 인터렉티브 예술을 선보였지만, 이번 전시는 좀 더 오감을 사용하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예컨대 이응노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주제 뿐 아니라 판화와 수묵 기법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 관객의 신체 움직임을 감지해 이응노의 `군상` 속 인간으로 표현한 작업, 혹은 관객이 타자기로 텍스트 작품에 참여하는 등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유도하는 작업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오감의 경험이 과연 전시제목처럼 진정 작품과의 `교감`을 만들 수 있을까? 컴퓨터그래픽, 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관객과 작품이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상호작용하게 하는 작업들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백남준이 60년대 비디오아트를 창안한 이래 뉴미디어가 예술장르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90년대 전시장은 이미 센서장치가 내재된 스크린, 텍스트와 사운드가 결합된 비디오, 웹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아트 및 게임아트 등을 소개하면서 관객을 인터렉션의 예술세계로 초대했다. 그러다 점차 뉴미디어아트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렉션이란 게 한낱 전자게임과 같은 유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반성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인터랙션을 통해 작품세계에 깊이 몰입하거나 교감할 가능성을 시험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시 묻고 싶다.

이응노의 작업과 교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컴퓨터그래픽으로 작품을 이루는 물질을 분석하고 작가의 작업 궤적을 추적하거나 모방하는 과정에서 작업에 대한 이해와 교감이 생기는 것일까? 필자는 이응노의 작업을 현대적 매체로 읽어내거나 관객을 작품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시도에 공감한다. 다만 `교감`이란 단지 오감을 나누는 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보들레르가 그의 시 `교감`에서 말했던 것처럼 물질세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에 접근하려는 것, 즉 어쩌면 이응노가 추구하는 것과의 정신적 교감이 우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원본을 충실히 읽으려는 노력 역시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자칫 첨단의 기술을 통한 인터랙션이란 화두에 지나치게 발목을 붙들리지 않기를!

유현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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