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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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의 소통 부재가 심화되면서 부모가 자녀의 생활비와 용돈을 간편한 계좌 이체 대신 자녀를 집으로 불러 현금 봉투로 건네는 사례가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얼굴 보기 힘든 자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자녀가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현금 사용비중이 점차 줄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현금이 부모와 자녀를 잇는 반강제적인(?)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전 서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자녀에게 매달 현금으로 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김 씨가 자녀의 손에 직접 용돈을 쥐어주는 이유는 자녀와의 의사소통과 스킨십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김 씨도 이전에는 다른 집처럼 용돈을 은행계좌로 송금해 줬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녀가 부모를 찾아오는 횟수가 자연스레 줄어들자 용돈을 주는 명목으로라도 자녀와 만나기 위해 김 씨가 어쩔 수 없이 택한 조치다.

이 모 씨도 최근 서울에서 취직 준비 중인 자녀에게 용돈을 현금으로 직접 주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녀에게 이 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주고 재량껏 쓰도록 했지만 어느 순간 자녀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용돈 한도액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또 자녀가 신용카드로 서울에서 모든 생활비를 해결하다보니 대전의 부모를 찾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결국 이 씨는 자녀의 씀씀이를 줄이고 자녀와의 만남 횟수를 늘리기 위해 용돈을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게 됐다.

부모와 자식 간 대화단절은 사회적 추세다.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2017 청소년종합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9-24세) 4명 중 1명(25.9%)은 부모와 대화를 거의 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매일 대화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 비율은 5.3%에 불과했다. 또 자녀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9-12세 5.6%, 19-24세 23.7%)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자 용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부모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녀의 무분별한 소비억제`도 용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이유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조사한 `화폐 사용 및 현금 없는 사회` 설문조사(복수 응답) 결과, `현금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9%는 `불필요한 소비 억제`를 꼽았다.

최권호 우송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 간 대화가 점차 감소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보인다"며 "용돈을 현금으로 지급함으로써 부모와 자녀가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로 인해 소통자체가 도구화될 가능성이 있어 부모와 자식 간 관계 증진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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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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