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딸아이가 필자에게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부족한 엄마라 미안하기도, 바쁜 엄마를 이해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편으로 지금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이해하겠지만 초등학생이나 사춘기에는 엄마 직업을 어떻게 생각할지.

더욱 성장해 딸아이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간호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필자는 뭐라 할지. 미래 남자 친구 혹은 사윗감으로 남자 간호사를 소개한다고 하면 어떨지.

물론 지금의 필자는 다 환영할 것이다. 필자는 어머니가 원해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다.

20대 초반 첫발을 내딛었는데 선배 간호사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이제 정말로 간호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서에서의 생활이 바쁜 와중에도 배우는 내용이 좋았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 좋았다.

3교대 근무로 불규칙한 생활에 신체·정서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도 친정 엄마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과거 엄마의 꿈이었던 간호사가 이젠 필자의 꿈과 인생이 됐기 때문이다. 타인과 사회에 도움을 주면서 급여를 받는 직업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지 새삼 느낀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있었다. 당시 나는 중환자실 파트장으로 근무했다.

`Level D` 보호복을 착용하고 메르스 환자를 처치하고 나오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당시 같은 일을 수십 번 반복해야 했다.

필자는 출산 후 복귀한 지 6개월 정도 됐고, 동료 간호사들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었다.

정부에서 국가 비상 상황이니 협조해 달라 했을 때 우리 간호사들은 중도 포기자 한명 없이 서로 격려하며 근무했다.

초기에는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을 기피하고 신상공개까지 하던 사회적 시선이 점차 변해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해줬다.

당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필자의 가슴에 남아있다. 바로 이런 게 간호사고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의 반은 병원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앞으로 간호사로 살날도 많다.

인생 대부분을 간호사로 살고 있는데 이 직업이 좋으니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인생이 행복 하고 싶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와 병원을 좋아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말한다.

필자가 쓴 글을 가족들에게 읽어주자 딸아이가 나를 꼭 안으며 `엄마,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자 딸은 조용히 필자가 작성한 글을 가리켰다. 이 기쁨에 오늘도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라 행복하다.

박미용 건양대병원 간호부 회복실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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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용 건양대병원 간호부 회복실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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