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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대전의 아시아 교류

2019-07-22기사 편집 2019-07-22 09: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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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수연 충남대 교수

아시아 음악회에 다녀왔다. 연정국악원 정기공연으로 마련된 동양 음악제다. 한국의 음악과 베트남·일본·중국의 음악들이 모여 한여름 밤의 소리 축제를 이뤄낸 것인데, 비슷하면서도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있다. 또 필연적인 다름이 한데 모여 같은 곳을 바라봤을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 아시아 대륙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갈등과 술수는 모두 쓸데없는 소동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삶이 먼저 있고 정치가 있었다면, 당연히 문화와 예술이 근원이고 정치는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여러 국가가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은 이전에 이미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소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참으로 덧없는 일이다.

베트남 악기 단보우가 내던 청량한 소리는 우리의 해금 소리와 어울려 공연장을 치솟고 일본의 사쿠하치는 우리의 대금처럼 마음을 파고 든다. 또 연변 성악가가 부르던 북한가요는 중국 민요 '모리화'의 편곡과 어울리고, 북한 관현악 '아리랑 환상곡'은 이미 아리랑을 잘 알고 있는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져준다. 정치적 갈등에 대한 문화적 극복이라는 말이 행여 정치적 문제를 외면한 문화주의의 주장으로 이해되면 안 될 것이다. 제 아무리 문화적 소통이 활발해도 정치적 억압과 소동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화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삶의 현장에서 앞자리에 있어 한다. 앞자리에서 제대로 된 소리로 소통할 때 문화는 진정한 정치적 문화가 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 남북 학술 교류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만나던 북한의 학자들이 있었다. 주체문학연구소의 문학연구자들이었는데, 그들과 교류하면서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그 즈음에 북미간 갈등이 심화됐고, 북한 폭격론이 제기되곤 했다. 그런데 폭격론이 부각될 때마다 필자가 먼저 떠올렸던 사람들이 바로 북한의 학자들이었다. 당시 시간강사였던 필자에게 먹고 살기 힘들겠다며 위로하던 젊은 학자가 있었고,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젊은 부부가 아기를 얻게 되면 부모님들이 주로 돌봐준다며 공통점을 찾아냈다고 즐거워하던 학자가 있었다. 필자는 북한 폭격론이 나타날 때마다 중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그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된 것은 그들과 공통의 관심사로 토론하고 공통의 먹거리로 끼니를 때우고 호기심 어린 질문 속에서 함께 산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소통이 있은 후에 비로소 다른 삶을 살아왔던 존재들이 서로 유사한 삶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추상이 아니라 구체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교류는 정치적 추상이 아니라 문화적 구체를 앞세워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지금 한일 갈등에 비쳐서 생각해보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지지했던 일본의 변호사 200여 명이 있지만 그들을 만나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추상적인 도덕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들은 일본에서의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릅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안위를 담보로 한국이라는 이웃의 타자에게 마음을 나눠준 것이라고 해야 하는, 무한히 박수 받아야 할 옳은 추상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한국 친일문학연구자였던 임종국 선생을 몸소 나서서 일본에 소개하고, 한국의 연구자들과 일본제국주의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던 오오무라 마스오 선생 같은 분이다. 내가 오오무라 마스오 선생 같은 분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함께 나눈 학문적 대화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소통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소통은 진정해지고, 문화적이면 문화적일수록 소통은 깊어진다. 아시아 음악제에 모였던 아시아의 음악가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이 교류를 아시아 대륙이 본격적으로 세계사에 알려지기 시작하는 근대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전에서 펼쳐보였다는 점이야말로 내게는 더 뜻 깊다. 박수연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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