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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반드시 지켜야 할 정신

2019-07-18기사 편집 2019-07-18 0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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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서광사 주지 도신

만일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을 나 혼자 살고 있다면 군중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법과 질서, 윤리와 도덕 등이 그래도 필요할 것인가?

이 생각을 짚어 보기 전에 먼저 더듬어 봐야 할 생각거리가 있다.

나 한 사람만이 아닌 무수히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사는 우리는 왜 법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고, 윤리와 도덕이 필요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나의 이해대로 추스르면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의 근사치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에 혼자 존재하고 있다 할지라도 '살아야 한다는 전제'로 인해 지켜야 할 그 무엇인가가 발생한다는 것을 추정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필자는 '양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벼를 심은 뒤 벼의 성장을 위해 농약을 뿌리게 되는데 이 농약의 양이 지나치면 우리는 쌀을 먹는 것이 아니라 농약에 가까운 것을 먹게 되고, 물을 오염시키면 오염 정도에 따라 식음의 결과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스스로 살고자 한다면 자연에 대한 그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양심은 생명 사회에서도 강하게 통용된다.

무리 사회에서 통제성을 지닌 법이나 강요되는 도덕들은 실제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양심을 건강하게 지켜낸다면 그다지 쓸모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지키는 것'에서 '자신만의 삶을 지키는 것'으로 방향을 틀면 통제성의 법이나 강요성의 도덕은 절대적으로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삶을 지키는 것'은 타인의 삶을 해쳐도 된다는 합리화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지키는 것'은 나를 포함하고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과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 사회일수록 '양심'은 더욱 교육되어야 하고 이것이 삶의 깨우침이 되도록 마음의 벽을 역동적으로 허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먼저 해친다.

1990년대 한참 유명세를 타며 금의 시대를 누렸던 가수 유승준은 군 입대를 앞두고 2002년 1월에 미국의 시민권을 얻은 후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그 이후에 비난 여론이 너무 거세졌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로 규정해 입국을 제한했다.

이때 유승준이 '자신만의 삶을 지키는 것'에서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지키는 것'의 양심을 선택했다면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참담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오히려 더 존경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대법원에서 비자발급 거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져 한국 땅을 밟을 가능성이 열렸지만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당시의 유승준에 대한 잔상이 살아있어 또 다른 거친 세월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리 사회일수록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지키는 것'의 힘은 절대성을 갖는다.

바람이 심할수록 촛불의 심지가 굵어야 하듯이 혼돈의 시대일수록 양심이 굳건해야 세상의 요동에도 크게 흔들릴 일이 없을 것이다.

양심이야 말로 진정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이며 우리를 구원해 줄 내재된 천사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지 않겠는가?

알리기에리 단테의 말을 끝으로 밝아지기 위한 세상을 위하여 양심 운동에 한 발 전진해본다.

"양심은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 삼아 아무 것도 두렵게 하지 않는 좋은 친구다." 도신 서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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