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해 우수한 유전자만을 선택해 사람이 태어나면 그의 계급층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가타카(GATTACA)`는 1997년 개봉 당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오늘날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다면 그 때의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유전자 서열 분석 비용이 천 달러 수준으로 하락하고 매우 효율적인 유전자 가위가 개발되면서 바이오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00년대 초반 DNA 염기 서열 분석 경쟁이 시작된 이후 유전자 분석 비용은 무어의 법칙보다 빠른 속도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조만간 바이오 기술의 대중화를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얻은 정보를 활용해 유전자를 자르거나 붙여 유전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라 하는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전자를 자르거나 붙인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유전자 `재조합`일 것이다. 언뜻 들으면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말은 유전자를 잘라내 특정 유전자를 파괴하거나(knockout) 삽입(knockin)한다는 유전자 편집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유전자 재조합은 당뇨병에 필요한 인슐린을 대장균이나 효모에서 얻거나 제초제에 강한 콩, 해충에 강한 옥수수 등이 유전자 재조합 생물의 잘 알려진 예이다. 유전자 재조합은 유전자의 `어디`에 새로운 유전자를 넣을지 정확한 위치를 지정할 수 없다. 잘못된 위치에 들어갈 수도, 혹은 두 개나 세 개가 끼어들어갈 수도 있다. 어쩌다 성공하길 바라며 끊임없이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유전자 재조합으로 파란 장미를 개발하는데 14년이나 걸린 이유이다. 수천, 수만 번의 시도 끝에 `우연`히 성공하는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지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유전자 편집기술은 연구자가 목표로 삼은 부분만 정확히 잘라내고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집어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비정상적 유전자를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유전자를 편집함으로써,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유전자 가위 기술 중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미국 MIT가 발표한 2014년 10대 혁신 기술,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가장 주목받는 10대 미래기술로 선정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럼 연구자는 어떻게 유전자를 `편집`할까? 영화나 드라마처럼 연무가 넘쳐나는 플라스크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포에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을 뿌리고 전기자극을 주거나, 세포 온도를 섭씨37도에 맞춘 뒤 2-3일 정도 세포 배양장치에 같이 넣어두면 완성된다. 이 기술은 기존의 유전자 가위인 1세대 징크핑거(ZFN)와 2세대 탈렌(TALEN)과 달리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이 저렴하고, 빠르며 훨씬 사용하기가 간편해졌다. 더불어 정확성과 효율성도 높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실험실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변형생물체(GMO), 암, 심장병, 빈혈 등 다양한 질병치료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 획기적인 기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연구자가 원하는 곳만 절단이 가능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사염기서열을 자를 수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중국에서는 인간배아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수정란의 빈혈 유발 유전자에 유전자 교정을 시도해 86개 수정란 중 28개를 정상유전자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축복일지 재앙일지를 모를 일이기에 아직까지는 세계 곳곳에서 인간배아에서 만큼은 유전자 가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이 허용된다면, 영화 `가타카`와 같이 원하는 유전자만 갖춘 완벽한 맞춤형 인간을 만드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성과 생명윤리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는 지금, 유전자 가위와 같은 바이오 기술 기반의 사회적 기여의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김민규 충남대학교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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