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제주의 한 숲에서 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새들이 울부짖었다. 바로 제주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숲 비자림의 도로확충 공사가 2018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팔색조, 긴꼬리딱새, 애기뿔소똥구리, 두점박이사슴벌레, 비바리뱀 등 세계적인 희귀 곤충과 야생동물들이 비자림로 공사 때문에 더더욱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제는 제주인들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시민들뿐 아니라 문화재청까지 나서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페이스북에서 `비자림로 삼나무 통신`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시민모임이 자발적으로 비자림 현장생태조사를 하고 언론에 자료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비자림 살리기 운동에 나서고 있을 정도이다. 숲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은 필자가 얼마 전 관람했던 전시 `색맹의 섬`(아트선재센터, 5.17-7.7)에서 보았던 작품들 중 하나인 `산림법`이란 영상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산림법`은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우르술라 비에만이 건축가이자 도시학자인 파울로 타바레스와 함께 에콰도르 아마존의 유전과 광산접경에서 진행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며 광물자원이 풍부한 에콰도르의 외곽마을 사라야쿠에 에콰도르 정부와 석유회사가 원주민의 동의 없이 대규모 채굴을 감행하자, 사라야쿠 원주민들은 숲의 권리를 내세워 이에 항거하였고 그 결과 더 이상 채굴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산림법`을 통과시킨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과 숲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에서 인상적인 점은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며 숲을 법정으로 끌고 들어간 시라야쿠 원주민과 함께 숲이 고소자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상은 숲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체를 품은 거대한 숲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화면의 중심에 웅장하게 서있는 숲은 인간에 복속된 것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다가온다. `숲은 생각한다`의 저자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말을 빌려 "숲에 대해 원주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면, `산림법`은 성공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콘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 오직 인간의 형식으로만 숲을 보는 사고를 버린다면", 즉 인간의 도구로서만 바라보지 않는다면, 숲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적어도 경청할 자세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유현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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