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8번째 생일날에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받기 전만 해도 담낭염이란 말조차 몰랐었다. 10년 넘게 1년에 두세 번씩 배가 뒤틀리고 끊어지는 통증이 있을 때마다 급체라 생각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혼자 진단하여 약을 복용하곤 했다.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렇게 지낼 뻔 했다.

그러니까 지난 3월이다.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제2회 우성회 국제청소년회화전` 시상식에 학생 6명과 학부모 6명을 인솔하여 다녀왔다. 주최측에서 13명의 체재비 일체를 지원해 주었다. 56개 국가가 참여한 이 대회에서, 우리 학교 학생 36명이 입상하였고 단체상까지 받았다.

3월 14일 금요일, 난징 루커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난징시 외사판공실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장쑤성방송국에서 제공한 버스로 홍산초등학교(紅山小學校)를 방문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양국 학생들은 선물 교환과 전지공예 체험을 했다.

이어 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孔子) 사당인 부자묘(夫子廟)를 관람한 후 주최측의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지만 배가 더부룩하여 수저만 드는 척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12계곡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회하(秦淮河)를 유람선으로 둘러봤다. 복통이 심해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이튿날인 3월 16일에는 중국과 대만의 국부로 존경받는 쑨원이 잠든 중산릉(中山陵)을 비롯하여 난징박물관(南京博物院)과 난징안 등 주요 관광명소를 둘러봤다. 점심에는 기름기 줄줄 흐르는 30여 종의 음식을 골고루 맛보았다. 통증이 사라졌기에 마음 놓고 먹었는데, 그게 화근(禍根)이자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오후 일정 내내 복통이 있었지만, 나로 인해 일정을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자 끙끙 앓았다. 저녁이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행도 눈치 챘다. 나는 식사 자리를 떠나 호텔로 향했다.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가라앉을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택시 안에서 통증은 더해갔다.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손으로 움켜쥔 배가 파랗게 멍들었다. 대전국제교류센터의 송주희 팀장이, 흠뻑 젖은 내 옷을 보고, 택시 기사에게 종합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30분 걸려 병원에 도착했는데, 누군가의 전화를 받은 방송국 직원이 느닷없이 난징대학교부속병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병원에, 장쑤성(江蘇省) 외사판공실에서 초청한 외국 손님들만 전담하는, 의사가 있다고 했다. 황송하게도 그 의사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쑤성 외사판공실에서, 내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연락을 받고, 즉시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혈액검사를 비롯하여 CT 검사와 초음파 검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담당의사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또 다른 의사 2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3명의 의사들은 내 몸 상태와 결과지를 살펴보더니, 담낭염이라며 염증과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2시간에 걸쳐 4병의 약을 혈관에 주입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덕분에 중국의 모든 행사를 잘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담낭염 수술을 받은 날,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통상 외국에서 병을 앓게 되면 치료 받기가 쉽지 않다는데, 나는 행운아였다. 뒤늦게 알았지만, 담낭염과 기름기 많은 음식은 상극(相剋)이라고 했다. 덕분에 중국에서 담낭염에 대한 임상경험(臨床經驗)이 풍부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했다는 장쑤성 외사판공실 위원쥔을 비롯하여 난징시 외사판공실 조롱팅과 장쑤성방송국 장멍멍(張盟盟)은 편하게 진료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자녀가 있는 3명의 커리어 우먼들은 퇴근했다가, 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택시를 타고 찾아왔다.

그녀들 덕분에 의사들과의 소통도 쉬웠다. 서류 발급이나 진료 절차도 앞다퉈 챙겨 주었다. 밤 12시 넘어 치료를 마칠 때까지 함께하며,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VIP 대접을 했다. 이렇게 중국의 난징은, 담낭염과 함께 중국인들의 따뜻한 배려를 받은 곳으로, 내 맘 깊숙이 자리 잡았다.

대전화정초등학교 박종용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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