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여파, 폐지 유입량 크게 줄어

11일 대전 지역의 한 고물상 폐지 창고가 텅 비어있다. 고물상 사장은 많을 때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문승현 기자
11일 대전 지역의 한 고물상 폐지 창고가 텅 비어있다. 고물상 사장은 많을 때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문승현 기자
국내 경제 전반에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면서 폐지를 주워 연명하는 노인들마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경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폐지 등 고물의 매입단가 급락과 함께 리어카를 끌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고물상에 들어오는 폐지량도 자연스레 반토막 났다.

11일 대전지역 업계에 따르면 고물상의 폐지 유입량은 1-2년 전부터 꾸준히 줄기 시작해 최근엔 한달 기준 80t 수준으로 떨어졌다. 많게는 200t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60%가량 감소한 것이다. 이날 찾아간 서구지역 한 고물업체의 대표는 텅 빈 폐지 창고를 손으로 가리키며 "예전엔 여기가 가득 찼는데 요즘은 휑하다"며 "폐지 줍는 노인뿐 아니라 트럭으로 폐지를 실어나르던 사람들도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발길이 뜸해졌다"고 업계 사정을 귀띔했다.

유성지역 고물상 사장은 "파지나 고철, 비철 등 고물은 모두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불경기가 계속되고 값은 떨어지니 누가 폐지를 주워 밥벌이를 하겠느냐"고 한숨 쉬었다. 이어 "고물을 주워오는 노인들이 줄다보니 고물상으로 들어오는 폐지량도 크게 줄었다"며 "가격이 안 좋으니 폐지를 안 줍고 고물상에도 유입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폐지 가격 폭락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환경공단의 자원순환정책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지역 폐신문지 가격은 1㎏에 92원으로 2017년 같은 기간 136원에 비해 30% 이상 추락했다. 폐골판지도 2017년 6월 ㎏당 132원에서 올 6월 80원으로 폭락했다. 지난해 중국의 폐지·폐플라스틱 등 수입제한 조처로 발생한 국산 폐지의 물량 적체에다 경기침체 여파가 누적된 영향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고물상 업계에서는 폐지 가격에 제지회사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폐지는 고물상으로 모인 뒤 트럭에 실려 폐지압축장으로 향한다. 압축장에서 뭉쳐진 폐지는 최종적으로 제지회사로 들어가는데, 이 제지회사에서 폐지 단가를 조정할 수 있다. 제지회사에서 폐지 단가를 낮추면 압축장과 고물상, 폐지 줍는 사람들은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볼멘소리다.

한국환경공단은 폐지 가격이 내려간 이유로 세계 쓰레기 재활용 시장의 변동을 들었다. 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센터TF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쓰레기 재활용 시장 변동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제한 조처를 강화해 다른 나라들도 재활용 쓰레기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수출이 감소세"라고 말했다.

직격탄은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맞고 있다. 이날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60대 노인은 "예전엔 대형마트 근처나 상가 등에서 나오던 박스 등으로 하루에 세 수레씩은 너끈히 채웠는데 오늘은 겨우 한 수레 채울 정도밖에 물량이 없다"며 "이마저도 어제 반을 주워 놓아서 가능했다"고 울상 지었다. 이어 "한 수레에 8000-9000원 받던 돈도 이제는 5000-6000원밖에 받지 못한다.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이 정도면 병원 갈 돈도 안 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문승현·천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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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대전 지역의 한 고물상 폐지 창고가 텅 비어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11일 대전 지역의 한 고물상 폐지 창고가 텅 비어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천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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