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格)`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어떤 사람의 태도나 매무새가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될 때, 흔히 `격에 맞지 않는데`라거나 `격이 떨어지는데`라고들 하면서 쓰는 말이다. 표준 국어 대사전을 찾아보면, `격`은 여러 의미와 쓰임새가 있지만 그 가운데, 명사로 쓰이는 대표적인 의미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로 설명되고 있다. 2017년 이맘때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갈등의 본질은 `격`의 문제였다. 물론 그 드라마에서 `격`은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천민자본주의적 시각의 산물에 불과했지만, 어떻든 간에 `격`의 차이는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건축에 있어서도 `격`은 중요한 명제를 제기한다. `격`이 맞지 않는 건축물들은 공동체의 바람직한 발전에 장애 요인을 제공함은 물론, 건축 환경의 난개발을 야기하고, 경관을 저해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 급속한 경제적 발전의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미처 `격`의 문제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고, 그 여파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병리적 현상들을 노정(露呈)시켰으며, 현재 시점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한편에서는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격`이 있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정의 내려질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배려(配慮)의 건축`, `맥락(脈絡)의 건축`, `자족(自足)의 건축`, `본질(本質)의 건축`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배려는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에 있어서도 배려는 기본이 되는 디자인 고려사항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배려는 우선 순위가 되기 어렵다. 내 건물이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우선이지 내 건물이 들어서면서 부족해지는 일조시간과 가려지는 조망은 그야말로 뒷집이라서 감당해야 할 몫이 될 뿐인 경우가 많다.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역시 법적 기준과 심의만 없다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사항이다. 그러나 배려가 없는 건축은 절대 격이 있는 건축이 될 수 없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면서 자신은 배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결국 서로 핏대만 올리는 아수라장이 될 뿐이다.

맥락은 콘텍스트(context)의 우리말 표현으로 사전적으로는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축에서 맥락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의 건축물이 서있는 땅의 전반적인 상황, 즉 자연환경과 지형, 기후 특성, 이웃한 건물의 규모와 형태 등 물리적 요인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 동네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경제적 특성 등 인문적 요인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맥락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건축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므로 많은 지역들이 지켜야 할 맥락이 왜곡되거나 깨뜨려지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총체적으로 지역의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족이란 스스로 넉넉함을 느끼는 것인데,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이야기가 `이왕이면 넓게` 혹은 `이왕이면 크게` 라고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넓게만, 크게만 짓는 것은 현명한 건축자의 태도가 아니다. 스스로의 격을 낮추는 행위이다. 예로부터 `고대광실(高大廣室)`이란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적이 많지 않았다.

본질을 건축에서 이야기한다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특히 생각해 볼 것은 건축물의 의장과 재료이다. 주변의 건축물들을 돌아 보면 기능과 관계 없이, 고전적 모티브의 모방을 하면서 어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근 유행하는 건축 스타일을 복제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데 정말 격이 떨어지는 결과들을 보여줄 뿐이다. 건축물의 본질에 정직한 접근을 하는 건축이 격이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격`이라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에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지만 돈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제는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벗어나 `격이 있는, 아름다운 삶을 우리의 건축을 통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실현해보자.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사)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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