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음과 냉방병

김기병 참솔한의원 원장
김기병 참솔한의원 원장
행정안전부가 문자로 알리는 폭염경보 소리가 휴대전화에서 요란하게 울린다.

지난해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역대 최다인 4526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잠깐 밖에 나가보니 뜨끈하게 달궈진 솜이불과 같은 공기가 몸을 밀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더위에 몸이 상한 것을 민간에서는 `더위를 먹었다`고 하고, 한의학에서는 주하병(注夏病)이라 부른다.

열에 노출돼 체내 심부 온도가 37-40도, 중추신경의 문제가 없는 상태로 피부가 땀으로 축축하고 그늘에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 혼미한 정신이 회복되는 일사병이라고 한다. 심부온도가 40도를 넘고 중추신경계의 문제가 생겨 혈압이 떨어지고 정신상태가 비정상, 땀이 나지 않으며(피부가 땀에 젖어 있을 수는 있음) 여러 가지 위급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열사병이라 한다. 일사병은 열과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수분섭취와 30분 정도의 안정으로 대부분 회복된다.

열사병은 빠르게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주하병은 일사병, 열사병 증상에서 회복이 됐음에도 또는 그런 증상이 없었음에도, 다음과 같은 증상이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주하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입맛이 없다,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난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듯하다, 팔다리에 힘이 없고 저리거나 쥐가 잘 난다, 얼굴에 열감을 느끼고, 잠을 잘 못 잔다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체내의 음(陰)과 원기(元氣)가 부족한 상태에서 열에 몸이 상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음과 원기가 강하다면 충분이 이겨낼 수 있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 몸에 이상 증상이 남아있어 괴로운 것이다.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 등의 의서를 보면 이런 경우에는 보중 익기탕에 약재를 가감(加減)하거나, 생맥산, 삼귀익원탕, 청서익기탕 등을 체질과 증상에 맞게 처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십여 년 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맥과 증상이 주하병과 일치한 환자가 내원한 적이 있었다. 직업을 물어보니 비닐하우스에서 수분섭취도 할 시간 없이 난로를 틀어놓고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분이었다.

반대로 최근에는 여름에 장시간 에어컨을 사용해 냉방병으로 복통, 설사, 무기력,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에 발생해 그 증상이 주하병과 얼핏 비슷해 보이나 맥의 형태와 빠름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자세한 진찰이 필요하다.

해당 증상이 있으면 주변 환경을 살펴보고 악화요인을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음과 원기를 상하지 않도록 하고 가까운 한의원이나 병·의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참고 견디는 것보다 삶의 질을 빠르게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모든 병에 있어 원인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환자들은 내 몸이 아플 때 하루아침에 병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의 타이어를 적절하게 교체하지 않고 다니다 펑크가 났을 때, 펑크 난 순간이 문제일까. 아니면, 타이어를 바꾸지 않은 그 세월과 무관심이 문제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김기병 참솔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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