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한국 사회를 연구한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인데 이미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용어이기도 하다.

외국의 생소한 주거 형식이었던 아파트 단지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현실은 불편하지만 "어쩌면 아파트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이 아닌가?" 라는 어느 건축가의 반문에 공감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대전의 주택 중 72.6%가 아파트이며, 한 해 신축되는 주택 중 97%가 아파트라고 한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집중으로 인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정부는 고밀의 아파트 주거단지 건설을 정책적으로 추진했고 지난 수십 년간 아파트의 양적 확산을 가져왔다.

아파트 건설이 주거 문제의 해답으로 제시되면서 오늘날 어느 정도 주거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우리는 그 대가로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기존의 마을과 공동체가 해체되었고, 국가대표 주택이 된 아파트는 우리에게 `정주 공간`보다는 `재산증식 수단`으로 더 강하게 인식 되고 있다.

우리는 주택을 구입 할 때도 타인의 기호와 기준을 더 고려한다. 미래의 매매 가치를 기준으로 주택을 선택하고, 평생을 머물러 사는 곳이 아니라 머지않아 떠날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마을이라는 소속감과 이웃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이러한 아파트 주거문화로 인해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에서 발생되는 이웃 간의 분쟁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층간소음 분쟁으로 인한 이웃 살인, 폭행, 방화, 기타 공동주택 관리 비리로 인한 고소, 고발 등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입주민 간의 분쟁은 곧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산된다.

이제는 아파트의 양적 확산에 걸맞게 아파트의 주거문화를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아파트에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아파트가 편리한 주거공간으로 인정받는 부분에는 폐쇄성과 익명성이라는 요소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입주민의 참여와 관심을 전제로 하는 아파트 공동체 문화 형성은 어쩌면 갈 길이 먼 여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파트 공동체문화 형성을 위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잘 이행해 나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공동주택 내 분쟁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다. 아파트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 활성화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우선 투명한 아파트 관리의 집행이 담보되어야 하고 관련 제도가 원만히 작동해야 한다.

둘째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여건 조성에 대한 지원이다.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고 `주민의 공유 공간`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잘 이끌어 나갈 `마을 리더`도 필요하다.

셋째 지방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다. 실패와 시행 착오에 실망하지 않고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노력에 대하여 꾸준한 피드백과 다양한 시도를 감내해내야 할 것이다.

공동체 관련 사업이 일회성 맞춤형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공동체 문화로 정착되어 나가려면, 공동주택 분쟁 해소, 주민 참여 및 공유 공간 확보, 지방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 이 세가지에 관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파트에 공동체 문화를 다시 정착시켜 나갈 수만 있다면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는 머지 않아 `공동체 공화국`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김준열 대전시 주택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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