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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역사의 무게

2019-07-09기사 편집 2019-07-09 09: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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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지난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역사상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번 회동은 정전협정이 이뤄진 1953년 이래 66년 만에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이었으며, 이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대통령이 됐다. 특히 이날의 3국 정상 회동이 역사적으로 이목을 끌었던 것은 남북미 정상의 사상 첫 판문점 회동임과 동시에, 애초 계획되었던 한미정상 회담 전날인 6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한 깜짝 제안에 김정은 위원장이 호응하면서 현실화 됐다는 데 있다.

무거운 무게로만 느껴졌던 긴 분단의 역사적 현실이, SNS라는 일상의 소통 플랫폼에 의해 몇 시간만에 역사적인 전환을 맞았다는 데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어느새 한 포털의 검색엔진'지식백과'에 등재되었다. 일부 언론들은 남북미 3자 회동으로 군사분계선 가까이의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전망할 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독일 작가 크리스티안 얀콥스키(Christian Jankowski)는 '역사'를 주요 테마로 다룬 작업으로 유명하다. 미디어 비판 성격이 짙은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사진작업, 퍼포먼스 등을 진행해오고 있는 얀콥스키의 비디오 설치 작품 '무거운 무게의 역사(Heavy Weight History)'는 대표적인 예이다. 텔레비전 스포츠쇼(콘테스트) 형식의 이 작품은 폴란드 국가대표 역도선수들이 바르샤바 시내의 역사적 기념물인 인물 동상들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일부 역사적 기념물들은 역도선수들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 진다. 그러나 또다른 일부는 꿈쩍도 안한다. 예컨대, 바르샤바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창과 방패를 든 인어는 쉽게 들어 올려졌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상징적 행위가 조각된 기념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국 총리 대처와 함께 공산주의를 견제하는 외교정책을 통해 공산권 붕괴를 촉발했다고 평가되어 2011년 바르샤바 중심부 공원에 세워진 레이건 기념동상도 역시 움직이질 않았다.

이들의 기념물 들기 컨테스트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참가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축하의 말을 전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눈앞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어요!"

얀코프스키는 기념물의 물리적 무게를 역사적 상징으로서의 무게와 나란히 대비시키면서, 역사적 기념비가 과시하고 있는 무거운 무게의 역사적 서사를 파열시킨다. 그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역사적 기념비가 과시하는 무거운 무게의 거대서사는 우리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일상은 순간 어떻게 역사화 되는 것일까. 얀코프스키의 비디오 작업과 더불어 SNS로 급성사된 남북미 3자 판문점 회동 역시 역사의 무게와 우리의 일상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눈앞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역사를 지켜보면서.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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