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대전 동구에 들어선 한 아파트 17층에 손병석(57)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이 산다. 그의 사택이다. 전국 각지 철도현장을 돌아다니느라 일주일에 이틀 정도 머문다고 한다. 사택에서 1㎞ 남짓 떨어진 거리에 코레일 본사 사옥(대전역 동광장)이 있다. 22층이 사장 집무실이다. 두 곳 모두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코레일 빌딩을 출입하며 내려다본 전망은 어마어마했다.

주변에 이렇다 할 고층건물이 없어 시원하고 탁 트인 시계(視界)를 선물한다. 저 멀리 야트막한 산의 경계가 아스라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조리개를 풀어 시야를 발 아래로 담그면 노후한 상가와 고만고만한 크기의 낡은 주택들이 오래된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한때 사람과 자원이 몰려들며 대전 발전을 이끈 중심가였다고 하기엔 남루할 지경이다. 성장 정체기를 지나 침체일로에 있는 대전 동구 원도심의 민낯인 셈이다.

오늘날 인구 150만의 대한민국 5대 도시로 대전을 밀어 올린 건 철도의 저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4년 6월 대전역이 건립되고 그해 11월 경부철도가 준공되면서 어엿한 시가(市街)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10년대 호남선까지 완공되면서 대전은 명실상부 서울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심장부로 떠올랐다. 철길을 타고 모여든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사람들이 토박이와 어울려 살아가는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이다.

영화(榮華)는 잠시였다. 급격한 도시 성장은 개발을 촉진했고 응축돼 있던 시세(市勢)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뻗어나갔다. 지역 발전의 상징과 같은 대전역은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 쓸쓸한 곳에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 쌍둥이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높은 곳에 있는 사택과 집무실에서 손 사장이 잠시 격무를 내려놓고,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쇠락한 대전시내를 찬찬히 조망해 보길 간권한다. 정부대전청사에 입주한 철도청 시절부터 대전과 고락을 같이해온 `시민 코레일`이 다시 한 번 지역 르네상스를 주도할 수 있는 청사진이 그려지리라 믿는다. 일테면 헛바퀴만 구르고 있는 대전역세권 개발 같은 것 말이다. 마침 4일이 손 사장 취임 100일이다. 쉴 새 없는 철도 안전 행보와 조직 개편 이후 재도약하려면 숨을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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