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몇몇 국가의 표준기관은 100억 년에 1 초쯤 겨우 틀리는 새로운 개념의 원자시계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100 년도 못사는데 100억 년이라니. 대체 이런 시계는 어디에 쓰이는 걸까?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면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간다. GPS 덕분이다. 번개가 친 뒤 천둥소리가 들리기까지 하나, 둘 센 시간에 음속을 곱하면 낙뢰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GPS도 같은 원리다. 2만 킬로미터 상공에는 30대가 넘는 항법위성이 똑같은 시각(GPS-T)과 자기 위치를 방송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수신한 시각은 보낸 위성마다 다르다. 위성과 스마트폰이 떨어진 거리만큼 시간 지연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이 시간 지연 곱하기 광속의 속도로 자기 위치를 계산한다. 네 곳 이상의 위성을 이용하면 3차원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때 위성이 방송하는 시각이 부정확하면 스마트폰 위치도 부정확해진다. 산술적으로 1억분의 1초 어긋나면 위치에는 3 m의 오차가 생긴다. 항법위성에 원자시계를 싣는 이유다.

원자시계는 천문학에도 큰 역할을 한다. 최근 천문학자들이 전파망원경으로 찍은 블랙홀 사진에 지구촌이 들썩였다. 이제 이론으로만 상상해오던 블랙홀 연구의 구멍을 관측으로 메울 수 있기에 과학계는 크게 환호했다. 55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의 희미한 점을 보려면 아주 큰 `눈`이 필요했다. 천문학자들은 지구에 흩어져 있는 8대의 전파망원경을 이용, 지구 크기의 `눈`을 만들었다. 각 망원경이 수신한 전파를 합쳐야 하는데 지구가 너무 크고 둥글어 (게다가 돌기까지 해) 문제가 생긴다. 블랙홀을 떠난 전파가 흩어져 있는 망원경에 동시에 도착하지 않는다. 무작정 합친 전파의 파동은 결이 뭉그러져 제대로 상이 맺히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은 원자시계로 만든 정확한 시간 축선에 전파 신호를 저장해 문제를 해결한다. 자전하는 지구가 선물한 도플러효과로 천문학자들의 고생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지만.

`코어`라는 재난영화가 있다. 지구 핵이 갑자기 회전을 멈춰 태양풍을 막아주던 자기장이 사라진다. 종말을 앞둔 인류는 핵폭탄을 터트려 지구 핵을 다시 돌려보려 한다. 주인공들은 폭탄을 실은 `버질`이라는 초고속 굴착기를 타고 지구를 뚫고 들어가는 모험을 한다. 불행히도 현실 속 인류에게는 그런 굴착기술이 없다. 가볼 수 없으니 상상할 뿐 현재로선 지진파 말고는 그 속을 알아낼 수단이 없다.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바로 시계다. 물렁물렁한 지구는 끊임없이 꿈틀대며 지표의 중력을 미세하게 바꾼다. 중력이 변하면 시공간도 바뀌어 시계의 흐름이 달라진다. 이를 이용해 미래세대에는 지표에 촘촘하게 설치한 초정밀 시계망으로 지구 속 변화를 실시간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계망 이름은 `버질`!

초정밀 시계로 우주탐사를 꿈꾸는 이도 있다. 우리는 우주 구성 물질 중 단 1%만 알고 있다. 99%는 정체불명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어떤 과학자들은 은하계를 감싸고 있는 암흑물질이 시계에 아주 미약하게라도 반응해 눈금을 흔들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 `버질`을 장착한 지구는 은하계를 200 ㎞/s로 날아가는 암흑물질 탐사선이 되고 우리는 승무원이 된다.

브라이언 페틀리 박사가 쓴 `기초물리 상수와 측정의 최전선` 서문에는 어떤 믿음 위에 현대 물리학이 서 있는지 `사도신경`을 본 따 고백하는 글이 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전자가 같은 전하량과 질량을 가짐을 믿사오며, 모든 광자가 같은 속도로 자유 공간을 움직임을 믿사오니, 이들의 에너지와 주파수의 관계가 유일한 방법으로 맺어짐을 믿나이다. 중력이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질량과 거리로만 정해짐을 믿사오며, …`

물리 법칙과 상수들이 우주의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유효한지 묻고 있다. 과학이론은 실험으로 검증됐을 때에만 확고해진다. 이 검증을 위해 시계에도 맡겨진 역할이 있다. 새 원자시계의 정확도로도는 부족하다. 사실 얼마나 더 정확해야 하는지 우린 아직 모른다.

박창용 한국표준연구원 책임연구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