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중심 이론 수정·보완 필요

교육학 이론들은 온통 서양 사람들의 이름으로 도배돼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유용할 거라는 생각에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임용고시 치를 때만 요긴하게 사용됐을 뿐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실제 학생들은 교육학 이론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POE`라는 수업 모형을 예로 들어보자. 예상(Prediction) 단계에서는 교사가 제시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학생들이 예상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발표하면서 의견을 서로 공유한다. 관찰(Observation) 단계에서는 실제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한다. 설명(Explanation) 단계에서는 여러 학생들의 생각을 고려해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개념을 구성한다.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서양에서는 잘 적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틀린 답을 내놓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교육을 받아 정답을 알고 있는 학생이 한마디 하면 모든 학생들의 의견은 그 쪽으로 쏠린다. 결국 어른들은 한국 학생들이 정답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며 그들을 비하하게 된다.

교육학 연구에서 `자아존중감`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로젠버그가 만든 자아존중감 검사지 중에 `나는 자랑할 것이 별로 없다`는 문항이 있다. 매우 그렇지 않다고 해야 높은 자아존중감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한국 학생들의 반응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자아존중감이 서양의 학생들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말 한국 학생들은 서양 학생들에 비해 열등하고 자아존중감이 낮을까?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서양의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개발된 교육학 이론과 검사지들을 잣대로 사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혹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학생들의 정서를 반영해 수업을 진행하고 자아존중감 검사 문항을 개발하면 결과가 역전되지는 않을까?

필자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몇 년 전 토론 수업을 하면서 매우 진귀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안해 발표하고 그 아이디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발표팀의 내용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반론을 제기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과정중심 평가였다. 두 번의 평가가 있었는데 첫 번째 평가 후에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같은 반 친구를 비판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평가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혀가면서까지 좋은 성적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반론을 인격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이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영재학생들도 결국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생들의 성향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발표팀의 부족한 부분을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보완해주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반론을 제기할 때는 대안 없이 문제점만 지적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보완해주는 토론에서는 대안까지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토론의 질이 더 좋아진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적 토론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협력적 토론이 한국 학생들의 정서와 잘 부합된 것이다. PISA에서 최초로 실시한 협력적 문제해결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이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의 문화 속에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성향이 흐르기 때문이다.

서양의 유명한 사람의 이론을 베껴서 그대로 적용해보고 한국 학생들이 열등하다거나 문제가 심각하다는 식으로 폄하할 필요가 없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학생들의 정서에 맞도록 교육학, 교육과정, 교육제도 등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연구를 해야 할까? 결국 매일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밖에 없다. 필자가 교사 연구회를 조직해 3년째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오늘도 작은 돌 하나를 던져 본다.

김종헌 대전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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