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이 화제다. 우리나라 1세대 디자이너인 아버지의 영향 덕인지 감독 자신은 물론 영화계 안팎에서 `기생충`의 미술적 완성도는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와 미술의 친연관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이미 타계 했지만 사회성 짙은 영화 연출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Sidney Lumet)의 영화 `뜨거운 오후(1975)`가 그 예다. `뜨거운 오후`는 1972년 8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2인조 강도가 대낮에 은행을 털다가 경찰에 포위되자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펼쳤던 내용을 다룬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다. 강도 중 한 사람인 존 워트직 역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 파치노가 맡았다. 당시 아카데미에도 노미네이트 됐던 `뜨거운 오후`는 이후 시각예술가 피에르 위그에 의해 영상설치 작품 `제3의 기억(1999)`으로 재탄생됐다. 피에르 위그는 당시 실제 은행 강도범이었던 존 워트직을 찾아가 이때의 사건을 재연토록 하고 이를 촬영했다. `제3의 기억`은 실제 강도였던 워트직을 촬영한 영상과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뜨거운 오후`를 나란히 붙여 전시장에서 동시에 상영한 2채널 영상설치작업이다.

위그의 존 워트직 촬영 영상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자신을 영화 `뜨거운 오후` 속 실제 주인공이라는 존 워트직의 소개로 시작하는 영상은 그의 과거 범행을 재현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범행을 재연하는 존 워트직의 모습은 매우 어색하고 어설펐는데, 영화 `뜨거운 오후` 속 알파치노의 완벽한 연기가 동시에 재생되면서 워트직의 모습은 오히려 실제 주인공이 더 가짜같이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는 워트직이 카메라 앞에서 재연하는 동안 어설픈 배우처럼 연기를 하거나 영화 속 알 파치노의 행동을 어색하게 따라하고, "실제 영화에서는"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워트직은 강도 사건을 재연하는 내내 자신의 기억과 영화의 장면들을 뒤섞어서 그것이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는 실제 자신의 기억과 영화 속 허구에 의해 만들어진 기억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자신의 기억이 허구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1972년의 사건이 1975년 영화화된 후 30여년이 지난 한 사람의 기억이 가짜 기억으로 덧씌워진 과정은, 비단 피에르 위그의 작업 `제3의 기억`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을 경과하면서 각색되고 변경, 왜곡, 덧붙여지는 실존적 시간까지를 포함한다. 근래 인문학계에선 기억을 소환해 역사를 서술하는 구술프로젝트가 상당수다. 누군가의 현재 기억의 형태는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전체의 결과일수 있다. 그것이 비록 워트직의 경우처럼 실제와 허구가 뒤섞였을 지라도 그 기억엔 이유가 있다. 영화를 바탕으로 한 피에르 위그의 영상작업 `제3의 기억`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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