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 매무새가 흐트러질 때면 곱씹는 말이다. 살다보면 술렁거릴 때가 있다. 야릇한 떨림이랄까, 호흡이 쿵쾅거릴 때면 내가 나를 다잡는 말이다. 그래도 어설프다. 왜 사는가. 언제를 위한 오늘이었던가. 이 세상 어딘들 이 해골 하나 눕힐 곳 없으랴.

그러면 꼿꼿해졌다. 내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길,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불덩어리 같은 몸. 젊은 날엔 팔만사천이었는데 얼굴 붉히며 하나 둘 버리고 지금엔 마지막 남은 나조차도 버리려 한다. 돌아보면 너절하고 궁색 맞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완전주의자를 꿈꿨지만 완전주의자는 되지 못했다. 옹골팍지고 다부지지 못한 성격. 가다가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였다. 머물고 싶어 구름과 떠돌던 길. 머물지 못한 마음속에 불안과 방황, 슬픔은 있었지만 내가 나 같은 놈이 부처가 되어서는 안 됐다. 부처가 되지 못해도 좋았다. 아니, 부처가 안 된 게 더 좋았다. 그렇게 좌불(座佛)이 되지 못했으니 유불(流佛)이라도 되자던.

새벽안개가 밀려오는 도량에서 희붐히 움직이던 젊은 날의 내 그림자, 내 발소리에 놀란 나는 진득하지 못한 채 들끓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들마다 거친 호흡이 허공으로 흩어지곤 했다. 담쟁이 넝쿨 따라 촐랑대며 기어오르던 어둠이 가시고 그 절망의 속도처럼 날선 감정들, 한뎃잠을 마다않던 청춘들은 어둡고 구질구질하기만 했다. 뭐야, 난 뭐야. 내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웬 고집이, 자존심이 그리도 세었는지. 삶은 누추하고 왜곡돼 더디 가는 긴 밤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살아야 해? 나 자신과 싸움 없이 하루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날들이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길을, 저승 가는 길에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거늘. 버려도 아쉬울 것 없고 누가 집어가지도 않을 몸뚱어리. 적막하고 괴기하기만한 산방에서 상기된 얼굴로 삶에 찌든 감정의 오르막길 내리막길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다. 그렇게 번뇌만 한 켜 한 켜 더 깔아놓은 셈이었다.

그렇게 번뇌와 함께 한 자학으로 일관됐던 나날들. 그날들. 스님들은 겉으로는 기쁨이나 슬픔 같은 자신의 감정들을 내비추지 않는다. 백랍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나도 그랬다.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마음의 바닥에 뒹굴 때 그래, 그래서 어쩌란 말인데? 산새 한 마리 날아와 내게 말했다. 깨달아 도를 이루겠다던 마음, 깨달아 부처가 되고자 했던 몸. 나는 얼마나 헐떡였던가. 허공사. 공중에 절 한 간 지어놓고 이산저산, 이절저절 떠돈 세월들이 꿈만 같았다. 허허로웠다. 갑자기 스산해지고 삭막해지더니 가슴이 저릿저릿해졌다. 갈 곳이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성불, 그건 어림없는 꿈일 뿐이었다.

지난날들의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얀 거품으로 사라져갔다. 독 오른 독사모양 똬리 틀고 앉았다 기도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용광로 같았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있는 거 다 버리고 아는 거 다 버리고 부모형제 다 버리고 옷과 신발까지 버리고 들어온 길, 천신만고 끝에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표정이 무겁고 진지해져가기 시작했다. 꿈에서 깨기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내가 나조차 버리고,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꿈의 세상에서 꿈꾸는 꿈은 꿈이 아니고 꿈꾸지 않는 꿈이 꿈이라는 걸. 이미 몇 생이나 그러고 살았던가. 관음도 꿈이요 미륵도 꿈이라. 시(是)도 꿈이요, 비(非)도 꿈. 꿈 또한 꿈이거늘. 이곳이 바로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연꽃나라 극락이요, 우리의 몸이 바로 부처이건만 어느 것이 생시이고 어느 것이 꿈이런가?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갔다. 개울물들이 서로 제 몸을 부딪으며 소리 내고 흘러간다. 벙어리가 꿈을 꾸면 누구랑 얘기할까. 후회는 없다. 두 번은 없다. 너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 우리는 피안의 곡예사. 바다로 바다로 가는 우리는 나그네. 단 한번 뿐인 생(生)이다.

혜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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